[기억할 오늘] 맥베스, 권력에 중독된 자들

최윤필 입력 2021. 10. 1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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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스릴러 작가 요 네스뵈의 '맥베스'(이은선 옮김, 현대문학)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인물들을 현대로 소환한 작품이다.

오히려 음모와 범죄의 리얼리티는 정치권력을 쥐고 움직이는 돈의 권력으로, 마약과 조직범죄와 자동기관총 같은 소품들 덕에 더 매끄럽고 격렬하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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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정치깡패 이정재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작은 권력과 부를 누리며 위세를 떨쳤던 '정치깡패' 이정재. 위키피디아

노르웨이 스릴러 작가 요 네스뵈의 '맥베스'(이은선 옮김, 현대문학)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인물들을 현대로 소환한 작품이다. 캐릭터와 서사의 거의 전부를 현시대 가상 공간에 그대로 이식했지만, 그래서 세 마녀의 예언은 없지만,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는 권력을 향한 욕망의 길을 머뭇거림 없이 좇는다.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상황도 찾기 힘들다. 오히려 음모와 범죄의 리얼리티는 정치권력을 쥐고 움직이는 돈의 권력으로, 마약과 조직범죄와 자동기관총 같은 소품들 덕에 더 매끄럽고 격렬하게 전개된다. 권력 중독의 치명적인 강력함은 마약에 댈 게 아니라는 표현, 일단 권력에 중독되면 정의감이나 휴머니즘 같은 가치는 사소해진다는 메시지도 네스뵈가 지닌 유리한 진지일 것이다.

경찰청장 덩컨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맥베스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때로는 경찰특공대를 동원하고 때로는 범죄조직을 활용하며 '정적'들을 살해한다. 명령과 거래, 합법 권력과 불법 권력은 그렇게, 별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아니 한두 개쯤 사라져도 흔적도 없을 우주먼지들처럼, 맥베스의 궤도를 돈다.

한국으로 치면 건국 직후의 서북청년회와 자유당 정권의 '정치깡패'가, '공권력'으로 해결하기 불편한 문제들을 대신 처리해준다는 재벌과 권력자들의 유령 같은 법인과 '조직'들이, 무엇보다 법적 사명보다 다음 자리를 더 탐내는 경찰과 검찰이 그들이다.

이승만·이기붕 자유당 정권의 '해결사' 이정재(1917.1.6~1961.10.19)는 한국 정치깡패의 상징적 존재다. 일제 하급 경찰로 권력의 맛을 알게 된 그는 해방 후 극우의 주먹으로, '동대문파'로 불리던 조직폭력배를 이끌며 동대문시장 이권을 장악한 사업가로, 이승만·이기붕 정권의 사주와 비호 아래 사사오입 개헌 국회 난동(1954)과 자유당 창당동지회 방해 사건(1955), 대선 야당 집회 난동(1956), 장충단공원 정치테러(1957)를 잇달아 저지르다 5·16 군사정변 직후 체포돼 사형당했다. 그의 마지막 욕심은 고향 이천의 국회의원 출마였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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