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李 지사가 ‘성공한 전태일’이라 우기는 사람들에게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1. 10. 19. 03:21 수정 2023. 11. 2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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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분신 51주기 앞두고 ‘이재명은 전태일’ 찬양한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
李 지사가 약자 편이었다면 부동산 투기꾼들만 배 불리는 사업을 설계하고 서명했을까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소년은 파산한 집안의 장남이었다. 신문팔이, 구두닦이로 일하면서도 해 질 녘 판잣집으로 돌아오면 부모 대신 세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고 숙제를 봐줬다. 여동생은 오빠를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음치였지만 노래와 막춤으로 우릴 웃겨서 연예인을 해도 잘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월30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동 전태일 열사 옛집을 찾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가난에 쫓겨 전국을 떠돌던 소년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닌 1년이다. 낮엔 구두 닦고 밤엔 공부하면서 소년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조물주에 감사한다”고 일기에 썼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더욱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상경한 소년은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 공장에 취직한다. 그리고 처참한 노동 현실을 목도한다. 전깃줄 위에 먼지가 눈처럼 쌓인 공장, 허리를 펼 수 없는 다락방에서 열세 살 앳된 여공들이 하루 14시간 재봉틀을 돌리고, ‘타이밍’이란 각성제를 삼키며 밤샘 작업을 했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이 가여워 소년은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 주고 자기는 도봉동 집까지 걸어서 퇴근했다.

근로기준법에 눈뜨지 않았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폐병으로 피를 토한 여공이 그날로 해고되는 광경을 보면서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 “하루 14시간 노동을 10~12시간으로 단축해주세요. 일요일은 제발 쉬게 해주세요.”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태우기로 결심한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란 이름의 스물두 살 청년은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안은 채 온몸을 불사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절규와 함께.

내달 51주기를 앞두고 전태일이 정치판에 소환됐다. 지난 8일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기 페이스북에 이재명 경기지사와 전태일 사진을 나란히 올린 뒤 “이재명은 성공한 전태일”이라고 썼다. “전태일이 검정고시에 붙고 대학생이 되고 사법고시에 합격했구나. 역사는 시계를 초월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세종대왕에, 추미애 전 장관을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던 당이라 “이러다 윤미향은 유관순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하필 대장동 특혜 의혹이 이 지사를 정조준한 형국이라 같은 당에서조차 비난받았다.

둘 다 지독히도 가난한 성장기를 보낸 것, 소년공으로 일한 것은 맞는다. 그러나 이 지사가 자기 형제들과 어린 여공들을 내 몸처럼 돌봤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전태일은 출세나 권력에도 관심이 없었다. 노동 지옥을 벗어나려 공장 관리자가 되려 했던 이재명이 ‘만 가지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무협 용어 ‘만독불침(萬毒不侵)’에 자신을 빗댔을 만큼 깡과 야심으로 뭉친 이였다면, 전태일은 재단사 자리도 마다한 채 어린 여공들을 도와 궂은일을 도맡았던 청년이다. 친구 임현재는 CBS 다큐에서 “주일 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태일이는 ‘사랑’이란 말을 참 많이 썼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 목사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 전 의원 상상대로 전태일이 살아 대학생이 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면 이재명보다는 조영래 변호사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전태일보다 한 해 먼저 대구에서 태어난 조영래는 전태일 분신에 충격받아 서울대 법대 학생장으로 전태일 장례식을 치른 인물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청년 노동자가 남긴 일기와 편지를 바탕으로 ‘전태일 평전’을 쓴 그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비롯해 인권, 빈민, 노동 문제에 헌신하다 43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타인을 죽여야 내가 사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은 결국 돈이 아닌 사람을 택한다. 이러다 다 죽는다, 함께 살자고 외친다. 그래서 ‘판타지’라고 비판받지만 세상은 늘 ‘꿈꾸는 바보’들이, 강도 만난 이웃에게 손 내미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구원해왔다. 청소부든, 막일꾼이든 각자의 노동이 존중받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던 전태일처럼, 조영래처럼.

만일 이 지사가 ‘성공한 전태일’이었다면, 원주민들 땅을 헐값에 빼앗아 부동산 강도들에게 몰아주는 ‘설계’를 하고 자화자찬했을까. 서민들이 살 임대 아파트를 줄여 부자들 배를 불리는 사업 보고서에 서명했을까. ‘악과 절대 타협하지 말라’ 부탁하며 마지막 숨을 거둔 아들과 한 약속을 지키려 40년을 가난한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다 간 이소선이 있었다면 호통쳤을 것이다. “내 아들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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