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사우디, 단교 5년만에 화해.. 중동 정세 바뀐다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종주국으로 오랫동안 대립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성큼 다가서고 있다. 양국이 다시 수교(修交)하기 위해 물밑 협상을 벌여온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이 같은 움직임이 중동 정세의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사우디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교장관은 지난 15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2016년 외교 관계가 단절된 이란과 관계 복원을 위한 대화가 진행 중인 사실을 공개했다. 알 사우드 외교장관은 인터뷰에서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이란과 네 차례 회동을 갖고 (사우디 상업 도시) 제다에 이란 총영사관을 재개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협상은 탐색전의 성격이었지만, 대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도 했다.
알 사우드 외교장관은 이달 초에도 이란과 대화 중임을 밝혔는데, 한발 더 나아가 회담 분위기까지 세세하게 밝힌 것이다. 앞서 지난달에는 유엔총회가 열리던 뉴욕에서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국가 관계자들과 만나 지역 현안 등을 논의했다고 이란의 메르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8월 보수 강경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양측 간 대화는 더욱 폭넓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양측 간 갈등이 격화하며 2016년 1월 단절된 두 나라의 국교 복원과 교류가 단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슬람권의 정치·군사 강국인 사우디와 이란은 종파뿐 아니라 정치 체제도 완전히 다르다. 특히 절대 왕정 국가인 사우디는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 이란의 부상을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위협으로 간주해왔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인 적은 없지만 시리아·레바논·예멘 등 인접 국가의 분쟁에 개입하며 사실상 대리 전쟁을 벌여왔다. 오랜 종파 분쟁 라이벌이지만 국교를 유지해오던 두 나라의 관계는 2015년부터 급속도로 악화했다. 이해 3월 사우디가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을 공습하면서 본격적으로 내전에 개입했다.
그로부터 여섯 달 뒤에는 사우디에 있는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일어난 대규모 압사 사고로 이란 순례객들이 대거 희생됐다. 그러자 이란이 사우디 당국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사죄를 요구하면서 양국 관계가 더욱 경색됐다. 여기에 2016년 1월에는 사우디가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시아파 무슬림들을 처형하자 이에 반발한 이란인들이 자국 수도 테헤란과 제2도시 마슈하드에 있는 사우디 공관을 화염병 등으로 급습하면서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며 결국 파탄에 이르렀다.
국교가 유지될 때도 사우디와 이란의 오랜 대립 관계는 복잡한 중동 질서를 더욱 혼란하게 하는 주요 변수로 간주돼왔다. 이 때문에 최근 양국 간의 데탕트 분위기는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고 있는지 관심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두 나라의 해빙 무드에 미국이 물밑에서 관여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코너에 몰렸던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후 최우선 중동 전략으로 이란 핵 합의 복원에 주력하고 있다. 제니퍼 가비토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최근 미 CNBC 인터뷰에서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되는 두 나라의 대화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행보 역시 핵 합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우디 정부 당국자는 FT에 “이란은 (핵 합의 파트너인) 서방 국가들에 ‘사우디와의 문제를 해결하듯 핵 합의 복귀 문제도 함께 협력할 수 있으니 우리를 정상 국가로 대우해달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일방 탈퇴한 이란 핵 합의 복원을 목표로 올 상반기 이란과 간접적으로 협상을 벌여오다 이란 정권 교체로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목표는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되, 미국에 유리한 조항을 최대한 삽입한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핵 합의 복원으로 신속하게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두 나라의 행보에는 급박한 내부 사정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은 경제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 해제가 절실하다. 사우디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탈(脫)석유 경제 개혁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려면 주변 지역 안정이 중요하다. 양국의 데탕트는 당장 국제유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국제 유가의 급변동 요소인 지정학적 리스크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두 산유국이 손을 맞잡고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나라의 해빙의 최우선 수혜자는 내전으로 황폐화된 예멘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예멘 내전은 2015년 3월부터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와 후티 반군을 돕는 이란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국토 곳곳이 황폐화되고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적, 전람회 출신 故서동욱 추모 “모든 걸 나눴던 친구”
- 선관위, 현수막에 ‘내란공범’은 OK…’이재명 안 된다’는 NO
- 독일서 차량 돌진, 70명 사상…용의자는 사우디 난민 출신 의사
- 전·현직 정보사령관과 ‘햄버거 계엄 모의’...예비역 대령 구속
- ‘검사 탄핵’ 해놓고 재판 ‘노 쇼’한 국회…뒤늦게 대리인 선임
- “너무 싸게 팔아 망했다” 아디다스에 밀린 나이키, 가격 올리나
- 24년 독재 쫓겨난 시리아의 알-아사드, 마지막 순간 장남과 돈만 챙겼다
- 검찰, 박상우 국토부장관 조사...계엄 해제 국무회의 참석
- 공주서 고속도로 달리던 탱크로리, 가드레일 추돌...기름 1만L 유출
- “이제 나는 괜찮아, 다른 사람 챙겨줘” 쪽방촌 할머니가 남긴 비닐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