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클래식도 온라인 선점해야 산다

김성현 문화부 차장 입력 2021. 10. 19. 03:06 수정 2023. 11. 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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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의 홍콩 오페라 상영을 알리는 포스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메트)은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빈의 슈타츠오퍼, 밀라노의 라 스칼라와 함께 세계 정상을 다투는 오페라 명가(名家)다. 이 극장 사무실 복도에서 1시간 넘게 우두커니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인터뷰가 예정된 피터 겔브 극장 총감독의 지각 때문이었다. 담당 비서의 위로에 겉으로는 “괜찮다. 기다리는 게 우리 일이니까”라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는 말이 실감났다. 9년 전 일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겔브의 지각에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 작곡가 탄둔의 신작 오페라 ‘진시황’의 영화관 중계가 그날 잡혀 있었다. 현장 총사령탑인 겔브는 인터뷰 도중에도 촬영·송출 준비 상황을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2006년 그의 취임 일성이 전 세계 영화관을 통해서 오페라를 상영하겠다는 것이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전경. 뉴욕 메트

물론 반발도 있었다. 당시 보수적 평단은 “팝콘을 씹으면서 오페라를 보라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메트 오페라의 영화관 상영은 공연을 전달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고난도 아리아를 부르고 퇴장하는 가수들을 현장 인터뷰하고, 막간(幕間) 전환을 위해서 대형 세트를 설치하는 모습도 낱낱이 공개했다. 스포츠 중계 같은 현장감과 박진감을 오페라에 더한 셈이었다.

그해 세계 8국 관객 32만명에서 출발한 메트의 영화관 오페라는 6년 만에 54국 295만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최근 메트 경영 보고서에 따르면 티켓 판매와 민간 후원을 빼고 미디어 수입만 2200만달러(약 260억원)에 이른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1년 반 동안 메트는 공연장 문을 닫았다. 올가을 공연을 재개하면서 메트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광고도 극장 중계였다.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

오페라만이 아니다. 빈 필의 신년 음악회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영국 국립극장(NT)의 셰익스피어 연극도 국내 복합 상영관에서 얼마든지 관람할 수 있다. 카라얀의 악단이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은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콘서트를 중계한다. 작곡가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협연으로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기념비적 공연도 안방에서 볼 수 있다.

연극 배우의 열연이든, 성악가의 절창이든 전통적으로 공연은 아날로그 영역이었다. 찰나에 타올랐다가 감동이라는 결과물만 남기고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일회성 예술이었고 노동 집약적 산업이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공연 교과서를 첫 줄부터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아날로그 영역이었던 공연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의 도로망을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클래식 역시 넷플릭스처럼 영상 서비스를 통해서 팬들의 통장에서 꼬박꼬박 월정액과 관람료를 인출해간다.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

문제는 코로나 시대에 공연 분야의 디지털 양극화도 빨라진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간극이 사라지고, 먼저 과감하게 투자에 나선 선두 주자들이 성과를 독식하는 온라인의 특징 때문이다. 아날로그 공연이 전부였을 때 예술의전당과 서울시향은 ‘홈경기’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1등과 나머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 베를린 필이 온라인 중계에 뛰어든 것이 13년 전, 메트가 영화관 상영을 시작한 것이 15년 전이다.

지난해 예술의전당도 ‘연극 무대를 스크린에서 재탄생시킨다’면서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극장 상영한 적이 있었다. 당시 유료 관객(영화진흥위 전산망)은 딱 432명이었다. 세계 공연계가 가상 공간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때, 우리는 뒤뚱뒤뚱 걸음마를 시작한 격이다. 예술의전당이 야외 광장에 스크린을 설치했다고 자족(自足)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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