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행의 뉴욕 드라이브] 골프 천국 美서 ‘신의 가호’가 있어야 부킹 가능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1. 10.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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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 인근 한 퍼블릭 골프장에서 지난 15일 골퍼들이 티샷을 하고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금요일인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시 인근의 한 퍼블릭 골프장.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티박스 앞에서 샌드위치·커피를 먹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골퍼 수십 명에 쉼 없이 오가는 카트들 때문에 마치 북적이는 할인 매장 같았다. 이곳에서 15년 근무했다는 직원 제이크씨는 “모든 티타임이 정원 4명을 꽉 채웠다. 비가 와도 예약 취소를 안 한다. 이런 건 정말 처음 본다”고 했다.

요즘 미국에서 골프 티타임 예약이 전쟁 수준이다. 넓은 땅에 값싼 골프장이 흔해 ‘아무 때나 산책하듯 골프 칠 수 있다’던 말은 옛말이다. 공립 골프장의 평일 티타임조차 일주일 전 가능한 예약 시간에서 단 30초만 지나도 자리가 동나고, 드물게 취소분이 생겨도 20~30분 안에 누군가 채간다. “주말 예약은 신의 가호가 있어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온다.

미 골프업계와 언론들은 이를 ‘20여 년 만에 돌아온 골프 르네상스’라고 표현한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등장에 미 골프 인구가 급증한 것과 비슷하게, 코로나 팬데믹이 골프 붐에 불을 댕겼다는 것이다.

지난 1996년 10월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가 만 21세의 나이로 PGA 메이저 대회인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첫승을 하며 상금패를 들어보이던 모습. 미국에선 이때를 '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영원히 바꾼 시점'이라고 하며, 이후 약 5년간 아마추어 골프 인구가 급증하는 '타이거 우즈 붐'이 일었다. /AP 연합뉴스

‘타이거 우즈 붐’ 이후 미국 골프는 20여 년간 고루한 장년층 취미란 인식 속에 사양화됐다. 2010년부터 10년간 전국 골프장 16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여행·모임 등 중산층 여가의 선택지가 줄고, 이들의 재택·원격 근무 등이 늘면서 골프가 인기를 끌었다. 뉴욕에 사는 40대 남성 데이비드씨는 “팬데믹 때문에 운영하던 사업체도 잠시 접고 봉사활동도 못 했다”며 “마음 편히 사람 만나고 시간 보낼 수 있는 게 골프뿐이었다”고 말했다. 50대 여성 조이스씨는 “10년간 골프채를 놨다가, 이거라도 하자 싶어 올봄부터 나왔다”고 했다.

전미골프협회에 따르면 2019년 6~10월 시즌에 비해 2020년 같은 시기에 미 전역의 라운딩 건수는 5000만건 증가한 5억건으로, 17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대도시 인근 골프장들은 라운딩 건수가 30~60% 늘어났다. 2020년 신규 골퍼도 620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골프용품 판매량은 지난해 3분기에 1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ESPN의 골프 시청률은 40% 늘고, 티칭 프로들은 레슨 급증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불리던 골프 인구 구성도 변하고 있다. CNN은 지난해부터 신규 골퍼의 40%가 여성이고, ‘골프 소외 계층’이었던 젊은 흑인 여성 전용 리그가 전국에서 새로 조직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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