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日정부가 대만 반도체 TSMC 공장을 유치한 이유

구자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LS일렉트릭 회장 입력 2021. 10.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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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인 대만 TSMC가 1조엔(약 10조3800억원)을 투자해 내년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 비용 가운데 절반인 5000억엔을 일본 정부가 댄다. 결정 과정에서 “왜 대만 기업에 돈을 줘야 하느냐” ”자국 기업을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이 심각한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일본 정치권과 정부의 승부수를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첨단 기업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공언했고, 유럽 의회 집행위원들은 부지 제공과 세제 혜택을 앞세워 첨단 기업 유치 투어를 다니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 여러 곳이 미국과 유럽에 공장 설립과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기업에 국가의 인센티브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려는 경쟁은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의 거대한 전장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내세워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중국 테크 굴기가 장차 미국의 기술 패권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앞장서 첨단 분야에 연구·개발(R&D) 투자를 아끼지 않아온 중국은 인공지능(AI)과 양자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을 추월했다.

이런 글로벌 기술 대전에서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1960~70년대 다른 나라의 기술을 수입하고 모방하는 것이 유일한 국가 전략이었던 한국은 이제 전 세계의 구애를 받는 기술 대국이 됐다.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TV 등 숱한 1등 상품을 보유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글로벌 기술 대전에 참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현재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새로운 미래 시장을 발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한국 정치권과 정부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최근 국가전략기술 R&D에 대해 전폭적인 세제 지원을 약속했다. 첨단 분야에 기업이 투자하면 투자액의 30~50%를 세액에서 감면해주겠다는 것이다. 공제율만 보자면 전례 없이 획기적이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과거 야심 차게 발표했던 수많은 정책이 적용 범위와 절차 등의 문제로 용두사미에 그쳤다는 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신성장·원천 기술 세액공제 제도다. 이 제도는 어떤 기술에 대한 투자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지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했다. 자율주행차, 전기자동차는 미래 자동차로 규정했지만 플라잉카는 없는 식이다. 세액공제 심사 과정도 6~7개월씩 걸린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가전략기술 R&D 세액공제안도 비슷한 우려를 낳고 있다. 대상 분야를 기술 34개로 한정하는 등 산업 생태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배터리는 전략 기술인데, 배터리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력 계통 연구는 빠져 있다. 반도체 역시 원천 기술은 포함됐지만, 대량 양산 기술은 제외됐다.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기업이 세금 감면을 위해 수개월 동안 공을 들이고, 필수 기술이 부족해 밖에서 사오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한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5G 같은 분야의 선두 주자가 된 것은 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한마음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그 유전자가 다시 필요한 시기다. 정부의 정책이 글로벌 기술 대전에 참전하는 한국 기업들의 ‘부스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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