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고시엔 우승 이끈 '손수건 왕자'의 아쉬운 퇴장

도쿄/최은경 특파원 입력 2021. 10.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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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프로야구 사이토 유키 은퇴

지난 17일 일본 프로야구 닛폰햄의 홈구장 홋카이도 삿포로돔에선 ‘손수건 왕자’로 알려진 우완 투수 사이토 유키(33)를 위한 은퇴 경기가 열렸다. 사이토는 닛폰햄이 오릭스를 상대로 4대3 1점 차 리드를 지키던 7회에 등판해 상대 타자 후쿠다 슈헤이를 상대로 총 7개의 공을 뿌렸다. 2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선 사이토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그런 그의 최고 구속은 129㎞에 머물렀다. 회심의 7구는 끝내 볼 판정을 받았다. 은퇴 경기 마지막 기록은 볼넷. 그래도 관중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웃는 얼굴로 관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사이토는 끝내 벤치로 돌아와 눈물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

사이토가 프로 선수 생활 11년 동안 거둔 성적은 통산 89경기 15승 26패다. 별도의 은퇴 경기가 열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다. 하지만 이날 삿포로돔엔 코로나 시국을 감안한 허용 관중 상한 1만여 명이 꽉 들어찼다. 여전히 많은 야구팬이 2006년 전국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 와세다실업고를 우승으로 이끌던 사이토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세다실업고 에이스였던 사이토는 2006년 당시 여름 고시엔에서 고교 야구 명문 도마코마이고를 꺾고 팀에 우승을 안긴 주인공이다. 총 7경기에 출전해 948개의 공을 던졌다. 당시 결승은 15회 연장까지 가는 접전에도 승부가 나지 않아, 이튿날 이례적인 재경기가 치러졌다. 중계 방송 시청률이 30% 가까이 치솟았다. 상대 팀 에이스 다나카 마사히로와는 자연히 라이벌이 됐다. 이때 사이토는 이틀 연속 결승전에서 완투하며 팀의 우승을 따냈다. 경기 도중 어머니가 챙겨줬다는 하늘색 손수건으로 곱게 땀을 닦아내는 모습에 ‘손수건 왕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비슷한 손수건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를 두고 고시엔이 낳은 마지막 수퍼스타라는 평가도 나왔다.

사이토의 야구 인생에서 그때의 인기는 큰 행운이자 불운이었다. 와세다대를 거쳐 프로에 진출한 사이토의 성적은 2011년 첫해에 6승 6패, 평균 자책점 2.69를 기록한 뒤 내리막을 걸었다. 큰 관심 속에 프로에 데뷔했지만 성적이 인기를 쫓아가지 못한 것이다. “원래 프로에서 통할 실력이 아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다” 등의 냉정한 평가가 따라다녔다. ‘고교·대학 야구 혹사’를 논할 땐 꼭 그의 이름이 불려나왔다. 고시엔 라이벌이던 다나카가 2013년 24승 0패라는 전설적인 성적으로 소속 팀 라쿠텐을 우승시키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땐, 두 사람을 비교하는 타블로이드지의 보도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사이토가 재기하는 일은 없었다. 1군보단 2군에 오래 머물렀다.

결국 사이토는 지난 1일 은퇴 결정을 발표했다. 지난해 입은 팔꿈치 부상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지난 11년을 돌아보며 “기대에 부합하는 성적은 남길 수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감사한다”며 “팬들 덕분에 지금 행복한 마음으로 서 있다”고 했다. “꼴사나워 보일지라도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후회는 없다고도 했다. ‘손수건 왕자’의 추억을 간직한 팬들은 “11년간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그를 축복했다. 2012년부터 사이토를 지켜봐온 구리야마 히데키 닛폰햄 감독은 “앞으로가 사이토 유키의 진짜 승부”라며 응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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