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최초의 흑인 美국무장관… 한미동맹 강화 위해 노력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1. 10.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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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합참의장 지낸 콜린 파월, 백신 맞았지만 합병증으로 별세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 전 국무부 장관이 18일(현지 시각) 코로나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파월 전 장관의 유가족은 “우리는 비범하면서도 다정했던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위대한 미국인을 잃었다”며 그가 이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파월 전 장관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앓고 있어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였다고 CNBC방송이 전했다.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2013년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해 인터뷰하고 있다. /이명원 기자

CNN은 파월 전 장관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미국의 외교 정책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4세기에 걸쳐 미국의 최고위 군인, 외교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공직에 복무했으며 미국이 이라크전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전했다.

자메이카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1937년 뉴욕시 할렘에서 태어난 파월 전 장관은 뉴욕시립대 재학 중 학사장교(ROTC)로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60년대 두 차례 베트남전에 파병됐고, 두 번째 파병 때 사고를 당해 불타는 헬리콥터에서 3명의 동료 장병을 구해내 ‘군인 훈장’을 받았다. 그는 여러 행정부에서 요직에 기용되며 ‘최초’ ‘최연소’ 타이틀을 잇달아 달아 막힌 길을 연다는 뜻의 ‘패스 브레이커’로도 불렸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그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면서 소련과의 군축 협상 등을 지휘했다. 냉전 말기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협력의 시대를 열도록 도왔다는 평도 받는다.

레이건에 이어 취임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그를 최연소 겸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에 기용했다. 합참의장으로서 그는 1989년 파나마 침공을 설계했고,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의 ‘데저트 스톰’ 작전을 지휘했다. 뉴욕타임스는 또 합참의장 시절 그가 국방부 장관이었던 딕 체니 전 부통령과 함께 “반세기에 걸친 냉전에 맞춰져 있던 미군의 변화를 재형성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가 “분명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적군을 패배시키기 위해 결정적이고 압도적인 전력을 사용해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파월 독트린’을 보여줬다”고 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자 그는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는 체니 당시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강경한 외교 정책을 주도하자 상대적으로 온건한 목소리를 많이 냈다. 그는 특히 2002년 여중생 사망 사건, 2003년 노무현 정권의 출범으로 양국 간 갈등이 커지자 한미 동맹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월 전 장관은 2004년 1월 외교부 장관에 취임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북핵 6자회담의 진전에도 기여했었다. 하지만 그는 2003년 유엔에서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숨겼다는 증거를 제시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 사임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2013년 본사가 주최한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석한 그는 김대중 당시 조선일보 고문과 한 인터뷰에서 “당신 인생에서 황금기는 언제인가”란 질문을 받고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는 대대장으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시기”라고 답한 바 있다. 1973~74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 대대장으로 복무한 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하고, 닉슨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을 겪는 등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며 “한국에서 다시 미군이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카투사 장병들과 보낸 시간은 가장 보람찬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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