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기사 한해원, 여성 최초로 남성 팀 진두지휘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2021. 10.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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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바둑]

여성이 감독을 맡아 남성 팀을 지휘한다. 바둑계에선 물론 처음 있는 일이고, 스포츠 쪽도 한참을 뒤져봤지만 전례를 찾아내지 못했다. 주인공은 한해원 3단. 39세 주부기사인 그는 내달 18일 개막하는 2021 한국바둑리그서 신생 팀 ‘유후(you who)’를 이끌게 된다.

바둑 리그 홍일점 사령탑에 선임된 한해원 감독이 18일 2차 선수 선발식 종료 후 이번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한국기원

“과거 여자리그 팀 감독 제안을 4, 5차례 받고도 매번 사양한 것은 시간적으로 전력투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이제는 아이들(2남 1녀)도 웬만큼 커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배출된 여성 바둑 감독 15명 중 ‘남자 팀 1호’ 기록을 세운 한해원의 출사표다.

팀 운영 방향에 대해선 “베테랑 선수들과 신인 감독으로 구성된 팀 특성에 맞춰 모든 것을 상의해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굳이 남녀를 구분해야 할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섬세한 배려를 통해 최대의 시너지를 이뤄낼 각오입니다.” 팀명 ‘유후’에 대해 그는 헬스케어 계열 코스닥 상장사인 EDGC의 제품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18일 2차 드래프트가 종료됨으로써 올 시즌을 함께할 소속 선수 8명이 모두 결정됐다. 특히 안성준 안국현 이창호 윤찬희 이태현 등 정규리거 5명 라인업에 대해 한 감독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구성”이라며, “그간 존경해온 대선배 이창호(46) 9단과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한 3단은 바둑동네에서 활동 영역이 다른 누구보다 넓은 프로기사로 꼽힌다. 특히 방송 쪽으론 공중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5~6개 아침 토크예능 프로그램에 번갈아 출연해온 지 20년째다. 바둑TV 진행은 이와 별도다. 그는 “팀이 최우선이지만 일정을 요령껏 조정해 방송에도 충실할 생각”이라고 했다.

미모의 프로기사 겸 방송 진행자로 인기 높던 2008년 코미디언 김학도(51)와 결혼했다. 당시 각종 바둑사이트엔 팬들의 축하 반, 아쉬움 반의 댓글이 폭주하는 등 큰 화제가 됐었다. 조훈현 9단의 “우리 총각 기사들은 뭐 했나”는 탄식(?)은 바둑계 ‘어록’으로 남아 요즘도 회자된다.

한해원은 바둑가(街)에서 ‘재테크 귀재’로도 통한다. 언젠가 TV 출연 때 “남편 생일 선물로 아파트 한 채 사줬다”고 발언, 만천하 남성들의 가슴을 또 한 번 강타한 적이 있다. 예전처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요즘도 투자를 계속하는 중이라고 했다. “재테크도 ‘큰 자리’와 ‘급한 자리’를 가려 수읽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바둑과 똑 닮았어요.”

스무 살 첫 대면했을 때만 해도 바둑 문외한이던 남편은 독학으로 일취월장, 인터넷 초단까지 올라왔다. “친정 아버님과 남편, 열 두 살 큰아들 등 3명의 기력이 비슷해요. 명절이면 피 터지는 라이벌전이 벌어지죠.” 이번에 감독을 맡게 된 데는 남편의 격려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고 했다.

외국어대 1학년 때 국제 여자대회인 보해배 8강 진출 직후 방송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승부사의 길에서 일찍 멀어졌다. “돌아보면 10년에 한 번씩 큰 단락을 지으며 살아온 것 같아요. 10대 시절은 바둑, 20대 때 재테크, 30대엔 육아. 이제부터 10년간은 바둑 감독과 방송에 올인 할 생각입니다.”

올해 바둑리그는 9개 팀이 경합한다. 몇 위가 목표일까. “포스트 시즌까지 가면 좋겠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 해요. 선수와 감독 모두 훗날 좋은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는 시즌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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