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남북관계의 정중동·동중정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입력 2021. 10.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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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이 한창이던 중학교 3학년 때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도파와 레슬링파로 나뉘어 응원전이 벌어졌다. 당시 학교에 레슬링 선수 몇 명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름 신경전이 대단했다. 결국 LA 올림픽에서 획득한 6개의 금메달 중 유도와 레슬링이 각각 2개씩을 우리나라에 안겼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중학교 남학생들의 혈기왕성한 승부욕은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책상을 한 쪽으로 몰아놓고 뒤엉켜 교실 바닥을 뒹굴며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몸소 실천하곤 했다. 이때 나는 유도파의 소위 대장 격이었다. 하루는 유도의 신기술을 보여준다며 하필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를 세워놓고 배대 뒤치기를 해보였다. 결국 그 친구의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쳤다.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 중 하나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같은 반에 레슬링을 하는 친구가 두 명 있었다. 한번은 체육시간에 씨름을 배우다가 체육선생님이 두 사람을 불러내 시범을 보였다. 기억을 떠 올려보면 두 명 모두 당시 또래보다 한 뼘 이상 키가 컸지만, 한 명의 몸집이 훨씬 더 컸다. 헤비급과 무제한급의 차이랄까? 그런데 예상 외로 승부는 쉽게 갈렸다. 뭔가 하지도 않는 듯한데 덩치 큰 친구의 무릎이 바닥에 먼저 닿아 있었다. 헤비급 친구가 이겼다. 하굣길에 그 친구는 내가 친구를 다치게 한 것을 두고 어디 가서 힘자랑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리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움이 함께해야 서로 다치지 않고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후에 국가대표가 되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나가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일찍 먼 곳으로 떠난 친구를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어 아쉽다.

무예를 수련하는 용어 중에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이라는 말이 있다. 정중동은 외적으로는 조용한 가운데 내적으로는 강한 움직임을, 동중정은 겉으로는 강한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드럽고 유연한 것을 의미한다.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모두 끊임없이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흰 치마저고리에 가볍고 부드러운 흰 수건을 들고 추는 한국무용 살풀이의 특징을 정중동과 동중정이 조화를 이룬 미의 극치라고들 한다. 엄숙한 가운데에서도 망자를 달래는 간절함이 표현되고, 원혼을 감동시키려는 극진함 속에 편히 저승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고요함을 아름다운 춤에 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중동과 동중정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미묘한 말이다. 서로 대비의 뜻을 나타내다 보니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척하면서 실제 분주한 것이나 겉은 맑고 깨끗해 보이나 속은 혼탁하고 욕심으로 가득한 것을 비유할 수도 있다. 얼마 전 남북관계 글을 읽다 보니 최근 종전선언 제안, 남북 통신연락선 재연결 등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 남북이 겉으로는 그저 어려운 상황을 관리하는 듯 보이지만 마치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있다. 실제 어려운 남북관계 속에서도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의미 있는 물밑 행동이 있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지금 남북관계 정중동의 의미가 겉으로는 임기 말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성과에 연연해 실제 유의미한 행동보다 말잔치만 요란한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으면 한다.

베이징 올림픽에 기대를 걸고 종전선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쉬 오르막을 오르지 못하는 남북관계와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를 한반도 위기는 당분간 미래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정부의 임기 말 그리고 새로운 정부의 임기 초까지도 “겉으로는 조용한 가운데 안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겉으론 부산하고 말은 많지만 내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모습”의 시간이 이어질까 우려스럽다.

<채근담>을 보면 ‘고요한 속의 고요함은 진정한 고요함이 아니며, 소란함 가운데서 고요함을 구하는 것이 마음의 참다운 경지’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즐거운 가운데서 얻은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며, 고난 속에서 찾은 즐거움이야말로 마음의 참된 품성’이라 한다. 남북관계가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말이 아닌 진중한 행동을 통해 만들어 낸 평화야말로 지속 가능한 평화가 아닐까 한다. 외적으로는 조용한 가운데 내적으로 진정한 움직임으로, 겉으로는 당당하면서도 안으로는 끊임없이 대화와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정중동이나 동중정이라는 양 극단의 모습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靜)’ 가운데 ‘동(動)’이 있고 ‘동(動)’ 가운데 ‘정(靜)’이 있기를 희망해본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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