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이국의 낯선 산을 오를 때
“출발 확정! 애타게 기다리던 알프스, 예약하러 가기.” 한동안 뜸했던 여행사 광고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이 위드 코로나 체제로 들어서고 있으며, 얼마 전 우리 정부는 사이판에 이어 싱가포르와 두 번째 트래블버블(여행안전권역)을 체결했다. 11월부터는 국내 거리 두기 제한도 유연하게 풀린다니 새삼 실감이 났다. ‘이제 정말 떠나도 되는 건가.’
산을 오르고부터 나에게 여행은 곧 산행이었다. 가까운 아시아 국가의 크고 작은 산을 올랐다. 1박 2일 휴가를 내고 다녀왔던 산도 있었고 그 지역에서 한 달을 머물며 오르내린 산도 있었다. 지도 한 장 들고 등산로 입구를 찾아 오른 뒤 내려가고 싶은 길로 내려갔다. 높은 산에 오르면 내가 여행하는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한눈에 보였다.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닫히고 한동안은 눈앞의 일상에 적응하며 성실하게 살았다. 매일매일 변함없이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놀랍게도 내가 미처 모르고 살았던 것들이 더욱 많았다. 그 안에는 ‘뒷산’도 있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뒷산의 여러 길을 오르내리며 나는 내가 이미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으로 내가 얼마나 충분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충분하지 않았다. 바로 낯선 산줄기를 헤매며 올라가고 싶은 길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싶은 길로 내려갈 때 느꼈던 자유의 감각. 그건 정비된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땀을 쏟는 행위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내 길을 찾아간다는 의미.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하산 후 이어지는 삶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내 길을 찾아간다.’ 이국의 낯선 산 위에서 다시 다짐할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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