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시크한 듯 무심하게, 훈민정음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2021. 10.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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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브라운 어텀 시즌의 그루미한 레이니 위크앤드. 그레이한 스피릿을 달래줄 머스트 해브는 바로 에코 프렌들리 플레인 텀블러에 담긴 엣지 있는 에일 한 잔, 그리고 이오니아해의 샤이닝 오션에서 자란 담은 솔티드 튜니 토프트 라이스 한 스쿱.”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주말에 비가 오길래, 좀 울적해져서 플라스틱 컵에 맥주 한 잔을 따라 놓고 밥솥에서 밥 한 술을 퍼 담아 참치 통조림을 반찬 삼아 먹었다. 뭔 소린지 모를 외래어를 분별없이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보잘것없는 일상이 한 차원 격상하는 것 같다. 이른바 ‘무심한 듯, 시크하게’로 대표되는 ‘보그체’다.

실질과 상관없이 겉만 흉내 내는 성향을 스노비즘(snobism)이라고 한다. 사실 스노비즘이라는 말 자체가 스노비즘이다. ‘젠체하는 경향’이라 해도 똑같은 뜻이다. 아무튼, 이런 경향은 패션잡지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두루 나타난다. 일본에서도 이제 쓰지 않는 용어를 여전히 짝사랑하는 법조 문체, 라틴어와 영어가 제멋대로 비벼진 의학 문체, 그리고 냉면처럼 문장을 비비 돌린 후 우격다짐으로 라캉이나 들뢰즈를 얹어 내놓는 사회인문학 문체 등이다.

물론 어떻게 말해도 어려운 개념도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을 위한 양자역학’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하지만 노력만은 가상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쉬운 글을 굳이 어렵게, 젠체하며 쓰다니 이상한 일이다.

진화생태학적으로 과시는 자질에 대한 신호다.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비싼’ 과시는 종종 정직한 신호다. ‘라캉을 술술 읊다니 분명 파리 유학파일 거야, 차트에 외계어를 적다니 분명 의대 수석 졸업일 거야.’ 대충 이런 식이다. ‘1+1은 2다’라는 말보다 ‘주세페 페아노의 공리계를 적용하면 1+1은 2다’라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페아노가 누군지 통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이는 그걸 알고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페아노 공리계가 뭔지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금방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라캉의 이론은 여전히 애매현란하지만, 그래도 라캉을 배우러 파리에 갈 필요는 없다. 현학적 문체와 배타적 접근성으로 무장한 지식의 독점성은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으면 누구도 독차지할 수 없다.

공짜 소프트웨어를 써봤을 것이다. ‘누구나, 값싸고, 쉽게’ 지식을 나누자는 카피레프트(著佐權) 운동은 컴퓨터 산업 초창기였던 1976년경 시작되었다. 이제 소프트웨어를 넘어서 지식 일반에 대한 보편 권리로 확장되고 있다. 최초 배포자가 지식을 무료로 나누면, 누구나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복사하고, 전파할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한 2차 저작물에도 역시 같은 규칙을 적용하자는 운동이다.

‘젠체하는’ 문체가 조롱을 받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지식의 값어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다. 얼마 전 보자기를 ‘패브릭 랩’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온라인 서점이 여론의 호된 화살을 맞았다. 단지 외래어를 줄이자는 애국주의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와, 이건 촌스러운 보자기가 아니라 세련된 패브릭 랩이네’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다. 곧 소위 ‘인문학술체’나 ‘의학체’, ‘법조체’ 등이 가진 과시적 효과는 사라질 것이다. 사실 정점을 한참 지났다.

지식 나눔 운동의 진짜 원조는 세종대왕이다. 1446년 10월, 세종대왕은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무료 배포했다. 저작권은 없었다. 기존 문자, 즉 한자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100%였는데, 결국 한글이 승리했다. 최만리 등은 “(백성들이) 27자의 언문으로도 족히 세상에 입신할 수 있다고 여길 테니…”라며 반대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쉽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지식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식 세계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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