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복온 공주와 모란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입력 2021. 10. 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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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꽃 중의 왕’이라. 모란을 이르는 말이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한때 중국의 국화(國花)로 물망에 올랐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뿐 아니라 모란에도 푹 빠져 살았다. 그 외에도 한·중·일의 수많은 사람이 모란을 사랑했다. ‘백화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너도나도 앞다투어 칭송했다. 고려시대에는 스님들까지 모란에 열광했는데, 모란이 상징하는 바를 알고서도 총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모란과 관련된 수많은 인물 중에 복온(福溫) 공주를 소개하는 이유는, 모란꽃 가득 수놓은 그의 혼례복을 지금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란 이야기는 대부분 책으로만 남아 있고, 실제 인물과 관련된 유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마침 7월 초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녕(安寧), 모란’전이 열렸다. 모란과 관련된 유물을 마주하니 그 의미가 새롭게 피어난다.

복온 공주는 누구인가. 순조의 둘째 딸이니, 정조의 친손녀이자, 김조순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1818년에 태어나 7세 때 공주로 책봉되고 13세인 1830년 안동 김씨 김병주와 혼인하였는데, 그 혼례복과 혼례방석이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특별 전시 중이다. 붉은 석류빛 활옷에는 모란뿐 아니라 연꽃, 복숭아, 매화, 석류, 국화, 나비 등을 한 땀 한 땀 수놓았다. 소매는 황색, 청색, 홍색의 색동을 대어 붉은 겉감과 조화를 이룬다. 부부가 마주 보고 절을 올리기 위해 만든 혼례용 방석은 모란과 연꽃, 원앙과 백로, 봉황과 박쥐 등을 수놓은 만화방석(滿花方席)이다. 각각의 꽃과 동물은 부귀영화, 자손번창, 부부해로 등을 상징한다. 이 정도면 혼례방석이 아니라, 그야말로 인문의 무늬를 아로새긴 유물이자 조선시대 ‘기호학의 총체’라 할 만하다.

조선시대에는 혼인과 같은 길례뿐 아니라 흉례에도 모란 문양을 사용했다. 왕의 혼을 모시는 의자나 매장용 물품을 운반하는 가마에 모란을 장식했다. 장명등이나 병풍석과 같은 석물에도 모란 문양을 새겨 넣었다. 또한 삼년상을 치른 후, 종묘에 모셔질 때까지 왕의 시신과 혼의 자리에는 어디나 모란 병풍도를 둘렀다. 모란은 인간의 삶과 죽음 모두에 동참하는 꽃이었으니, 꽃 중의 꽃이라 할 만하다.

만복을 부르는 수많은 치장과 장식에도 불구하고 복온 공주는 혼례를 치른 뒤 2년 만에 세상을 떴다. 그의 나이 열다섯 살, 참으로 짧은 생이었다. 복온 공주의 혼례복을 포함한 ‘안녕, 모란’전은 10월31일까지 열린다. 어서 서두르시라. 부귀영화가 스러지기 전에.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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