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쓰러지자 토트넘·뉴캐슬 경기 25분간 멈춰 살렸다

이영빈 기자 2021. 10. 1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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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바꿔도 축구 응원 팀은 안 바꾼다.’

축구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잉글랜드 사람들을 설명하는 유명한 우스갯소리다. 이런 잉글랜드에서 축구가 25분간 멈췄다. 환호와 야유를 퍼붓던 팬들,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던 선수들이 인명 앞에서 잠시 ‘전쟁’을 멈추고 한마음이 됐다.

뉴캐슬과 토트넘의 18일 경기를 관중석에서 보던 한 남성 팬이 심장 이상으로 쓰러지자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18일 뉴캐슬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리그 경기. 토트넘이 2-1로 리드하던 전반 41분에 손흥민이 코너킥을 준비할 때였다. 관중석 한편에서 누군가가 심장 이상 증세로 의식을 잃자 주변에 있던 팬들이 두 팔을 번쩍 들고 흔들며 그라운드에 구조 요청 신호를 보냈다.

토트넘의 왼쪽 수비수 세르히오 레길론(25)이 심상치 않은 경기장 분위기를 알아채고 주심에게 다급히 다가가 관중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지금 뛰면 안 됩니다. 경기를 멈춰야 해요.”

잠시 바라보던 주심도 상황을 파악한 뒤 곧바로 경기를 중단한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토트넘 중앙 수비수 에릭 다이어(27)는 그사이 토트넘 벤치로 가 팀 의료진에게 자동심장충격기(제세동기·AED)를 챙겨서 쓰러진 관중을 향해 달려가라고 말했다. 토트넘 의료팀은 먼저 현장에 가 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의료진 폴 캐터슨 박사와 함께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응원으로 가득 찼던 경기장이 25분가량 침묵에 빠졌고, 5만2000여명의 팬이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결국 팀 의무팀의 응급처치와 팬들의 심폐소생술을 받은 그 관중은 현장에서 의식을 되찾아 병원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뉴캐슬 팬들은 응급 상황이 잘 마무리되자 그라운드에서 재빨리 대처한 상대팀 토트넘의 레길론과 다이어에게 박수를 보냈다. 상황 정리 후 주어진 전반 추가 시간에 손흥민이 3-1로 만드는 추가 골을 넣었다.

뉴캐슬은 잉글랜드 내에서도 축구에 목숨을 거는 도시로 유명하다. 경기 날은 축구가 도시 전체를 빨아 들인다. 일례로 2부 리그로 강등됐던 2016-2017 시즌에도 한 경기 평균 관중이 EPL 상위권 구단들과 비슷한 5만명 정도였다. 보통 강등되면 관중이 20~30%는 감소하는데, 뉴캐슬에는 어림없었다.

이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뉴캐슬 사람들이 먼저 경기를 멈춰야 한다고 그라운드를 향해 두 팔을 흔들었다. 평소 잡아먹을 듯했던 상대 선수에게 박수까지 보냈다. 아무리 사랑하는 축구여도 사람의 생명 앞에서는 ‘한낱 공놀이’였을 뿐이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이날 “때때로 축구는 아무것도 아니다. 축구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오늘 경기장 내 모두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이날 골을 터뜨려 승리를 이끈 손흥민과 해리 케인 대신 레길론과 다이어를 경기 MOM(최우수선수)으로 공동 선정했다. 레길론은 경기 후 “승점 3(승리)을 따내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쓰러진 관중의 건강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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