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정하고 의결권 행사까지..국민연금의 특별한 직원 3명

조해영 2021. 10. 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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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전문위원회 리포트]
투자·의결권 의견 내는 전문위 출범 1년 반
독립성 취약한 구조 탓에 꾸준히 비판 제기
기금규모 증가하면서 업무 중요성은 커져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국민연금에는 특별한 직원이 세 명 있다. 이들은 국민연금 전문가 자격으로 국민연금기금이 닿는 범위의 거의 모든 일을 검토한다. 국내주식 비중 확대나 국민연금 투자기업을 상대로 한 의결권 행사,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투자 위험 관리까지 주요한 사안은 모두 이들의 손을 거친다.

이들의 직책은 국민연금 상근 전문위원. 거의 모든 사안을 들여다보는 이들에 대해서는 “역할이 크지 않다”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같은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른다. 다만 “입지와 권한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제도의 미비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시간에 쫓기며 기사 스크랩 보고 의결권 판단”

지난해 국민연금은 전문위원회 체계를 도입했다. 원래 국민연금에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와 기금위 아래의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실평위)만 있었는데, 실평위 아래 단계에 전문가로 구성된 3개의 전문위를 만들어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주요 투자기준이나 투자정책 개발·변경을 논의하는 투자정책전문위원회(투정위), 위험관리와 성과보상 정책을 논의하는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성보위), 주주권 행사 원칙·기준·방법과 책임투자 방안을 논의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꾸려져 1년 반 동안 운영되고 있다.

상근 전문위원은 말 그대로 ‘상근’으로 활동하며 전문위 3곳에 모두 참석한다. 투정위, 성보위, 수탁위 3곳의 위원장 역시 이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하지만 다루는 업무의 범위가 방대해 밀도 높은 검토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출범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대표적인 예가 3월의 수탁위다. 수탁위원들은 3월 내내 전쟁을 치른다. 국내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가 몰려 있는 시기로 대부분 기업에 지분을 가진 ‘주주’ 국민연금이 기업 저마다의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기 때문에 그 결정을 위탁받는 수탁위 역시 바쁠 수밖에 없다.

어떤 기업의 어떤 안건에 대해 살펴야 하는지는 직전까지도 대외비로 부쳐진다. “당사자인 수탁위원조차 회의 전날 오후, 심지어 가끔은 당일 아침에도 적게는 수십 쪽에서 많게는 수백 쪽의 자료를 받는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지난 13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촉박한 시간은 물론이고 “수탁위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언론보도 스크랩 정도로 판단에 참고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지적(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나왔다. 기업과 자본시장, 국민연금의 구조와 역할에 정통한 전문가를 모아두었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특성과 모든 안건의 배경을 세세히 검토하기에 충분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항산(恒産)은 어디에서 오는가

맹자는 항심(恒心)은 항산에서 온다고 했다. 바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미다. 상근 전문위원의 항산은 복지부에서 온다. 이들은 복지부 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일하고, 복지부로부터 급여를 받는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러한 구조를 두고 “전문성을 발휘해서 기금을 견제하라고 만든 자리지만 정작 그 자리를 틀어쥐고 있는 건 복지부”라며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해도 월급 주는 사람한테 매번 쓴소리를 하기가 쉽겠느냐”라고 말했다.

전문위원회와 상근 전문위원의 취약성은 탄생 때부터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전문위는 투정위·성보위·수탁위 3개로 구성됐지만 전문위의 탄생을 직접적으로 견인한 것은 수탁위의 필요성이었다. 전문위 탄생 전인 2019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약속했던 후속 조치로 수탁위를 만들어야 했다. 상근 전문위원 위촉 등 전문위 구성이 완료된 것도 지난해 주총 시즌 직전인 2월 말이다.

올해 상반기 자본시장 이목이 쏠렸던 국내주식 보유 비중 허용범위 확대 안건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 국내주식 안건은 투정위의 논의를 거쳐 실평위, 기금위로 올라갔는데 투정위 단계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 제기됐지만 안건은 기금위 재논의를 거쳐 결국 통과됐다. 이에 한 투정위원은 “의견을 내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전문위 관계자는 “다소 급하게 만들어진 부분이 없지 않다”며 “입지나 권한이 독립성을 가지고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 데다가 전문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공식적인 회의록도 남지 않아 의견이 기금위에 제대로 전달이 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반환점 돈 전문위…커지는 기금규모도 숙제

전문위 출범 이후 제기된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날로 커지는 것은 추가 숙제다. 올해 들어 900조원을 넘긴 국민연금기금은 내년에는 1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복지부는 예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금 규모가 커지는 시기에 적극적인 투자로 수익률을 내 이후 기금고갈에 최대한 대비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당분간은 늘어나는 시기고, 이에 따라 기금운용본부가 다양한 투자에 나선다는 것은 전문위를 주어로 놓고 보면 자산군 비중(투정위), 투자에 따른 리스크 관리(성보위), 커지는 자본시장 영향력(수탁위) 등 3곳 모두 업무가 늘면 늘었지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2월 말 위촉된 상근 전문위원 3명의 임기는 3년으로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만약 이들의 임기가 연장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전문위 제도는 이제 막 1년 반, 첫 라운드의 반환점을 돈 셈이다.

조해영 (hych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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