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첫 흑인 국무장관' 콜린 파월, 코로나19 합병증으로 별세

박하얀 기자 2021. 10. 1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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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라크 전쟁으로 ‘국민 영웅’ 부상
20세기 후반 주요 군사행동 관여
주한 미군부대 근무 ‘한국과 인연’

미국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이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4세.

CNN 등 미국 언론은 이날 파월 전 장관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파월 전 장관의 유가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성명을 통해 “우리는 다정한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위대한 미국인을 잃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그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1937년 4월5일 뉴욕 할렘에서 자메이카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파월 전 장관은 미국 흑인 공직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인물로 꼽힌다.

그는 뉴욕시립대학을 졸업한 뒤 미 육군에 입대했다. 이후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기 말 첫 흑인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시절인 1989년에는 흑인 최초로 합참의장에 올랐다. 1989년 파나마 작전, 1991년 걸프 전쟁 등 20세기 후반 미국의 주요 군사행동에 관여했다.

파월 전 장관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미국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이라크를 상대로 한 전쟁을 벌였다.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파월 전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라크군을 언급하며 “우선 차단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 후 초기 몇년 동안 71%의 호감도를 얻으며 ‘국민 영웅’이 됐다. 이듬해인 1991년 3월 이라크 침공에 대한 대응을 계획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자유메달을 수여받았다.

1996·2000년 대선 때는 잠재적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만큼 입지가 커졌다. 하지만 그는 “선거 정치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며 경선 참여를 거절했다.

파월 전 장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 때인 2001년 흑인 최초로 국무장관으로 기용됐다. 당시 그는 대통령 승계 서열 4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파월 전 장관은 부시의 최고 외교관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포함한 대테러 전쟁에 국제적 지원을 구축하는 임무를 맡았다.

2003년 2월 파월 전 장관은 유엔에서 연설하면서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숨겼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2년 후 발표된 정부 보고서는 “미 정보기관의 이라크 대량 살상 무기 능력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틀렸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부시 대통령에게 사임 의사를 밝힌 뒤 2005년 초 국무부를 떠난 그는 2010년 CNN 인터뷰에서 자신의 유엔 연설이 “영원히 남을 오점”이라고 했다.

파월 전 장관은 공화당 행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지만, 공직 생활 후반부 공화당의 ‘우익적 편향’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정치적 자본을 민주당이 집권하는 데 쏟았다고 CNN은 전했다. 그는 2008년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를 공개 지지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표명했다.

파월 전 장관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73~1974년 동두천의 주한 미군부대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한국군에 대해 “지칠줄 모르고 절대로 집합에 늦거나 술취해서 나타나지 않는 최고의 군인”이라고 칭찬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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