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들과 죽음에 대해 나눌 수 있어야"

한겨레 입력 2021. 10. 18. 22:16 수정 2021. 10. 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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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죽음교육' 하는 임경희씨

20년간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 출간
죽음 겪는 아이들 위한 매뉴얼 필요
공적 돌봄 네트워크 구축 논의해야
교직 생활 동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 임경희 작가는 아이들이 친구나 가족의 죽음을 겪을 때 공적인 돌봄이 바로 개입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임경희 작가 제공

지난 8월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뉴스에서 한 중학생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며칠 뒤 지인을 통해 그 학교를 알게 된 임경희(58)씨는 ‘곧 개학일 텐데 죽은 아이의 빈 책상을 보며 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이 힘든 시간을 보내겠구나’ 하며 걱정을 나눴다. 얼마 뒤 그 학교 상담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갑자기 친구를 잃은 아이들이 ‘슬픔의 터널’에 갇히지 않도록 돌봄의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학교의 요청에 임씨가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내 친구 네이선> 등 그림책 4권을 읽어주고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얘기를 나눴다. 죽은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보고 가족에게 전달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내내 유독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던 아이가 있었다. 임씨는 그 아이를 안아주면서 슬픔을 견디기 어려우면 전화하라고 했다. 그날 저녁 그 아이로부터 카톡이 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무도 저를 안아준 적이 잆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안아줘서 너무 슬프면서도 너무 따뜻하고 좋았어요.”

1988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올해 초 퇴직한 임씨는 거의 매일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줬다. “공부에만 내몰린 아이들에게 삶의 다양한 창을 내어주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에게 삶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교사의 언어보다는 문학적인 언어와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그림책으로 아이들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지 몇년째 되었을 때 한 제자는 병으로 세상을 뜨고, 또 다른 제자는 교통사고로 가족을 한꺼번에 잃는 등 연이어 죽음을 겪게 된다. 제자의 영정 사진이 교실을 한바퀴 돌아 나갈 때는 그는 반 아이들 앞에서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 역시 눈물만 흘릴 뿐 선생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우리 반 아이들이 슬픔을 잘 표현하고 건강한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장을 펼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읽어주는 그림책 목록에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을 넣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가 난 뒤에는 죽음에 대한 그림책 목록을 좀 더 늘렸다.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림책은 직접 읽어줬다. 원칙은 무언가 가르치려 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스스로 품은 질문으로 친구들과 소감을 나누거나 토론을 하고 글쓰기로 이어지도록 도왔다. 그가 최근에 펴낸 <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학교도서관저널)은 20여년간 교실에서 그림책으로 어떻게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지와 아이들이 보인 놀라운 반응과 성장을 보여준다. 지난 12일 퇴직 뒤에 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나 질문을 던졌다.

―왜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까?

“아이들은 보통 조부모의 죽음으로 처음 가까운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요즘은 반려동물의 죽음을 많이 경험한다. 또 매일매일 뉴스에서 죽음을 목격한다. 그런데 아무도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좋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런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교육이기에 필요한 거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불편해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죽음’에 대해 알게 되면 두려워할까 봐 이야기를 못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인터넷 기사나 영화, 뉴스까지 너무나 많은 죽음에 노출돼 있다. 세월호 참사 때 아이들은 눈앞에서 학생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방송으로 지켜보기만 했을 뿐 어른들에게는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피했다. 부모가 평소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사생관(死生觀)이 정립되어 있을 때 자녀에게도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부모 자신이 죽음이 무섭고 두려우면 자녀와 이야기하기 어렵다. 자신의 삶과 죽음부터 시작해, 가족과 지인들의 죽음, 세월호나 홀로코스트 같은 역사적·사회적 죽음까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 자녀에게도 좋은 교육을 시킬 수가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친구나 가족을 잃는 등 죽음을 겪었을 때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우리나라는 학교에 학교폭력, 왕따, 성폭력 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 학생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단계별 매뉴얼이 있다. 우리 삶에서 가장 힘든 일은 부모의 죽음, 친구의 죽음, 가족의 죽음, 사회적인 죽음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 사회는 아무런 돌봄 시스템이 없다. 외국에는 그런 시스템을 갖춘 나라들이 많다. 영국에선 학생의 부모가 죽었을 때, 아이가 홀로 얼어붙은 상태로 방치되지 않게 바로 공적인 돌봄이 개입된다. 돌봄센터와 연결이 되고 아이가 고인에게 편지도 쓰고 메모리얼 상자(추모 상자)에 고인과 공유하는 추억의 물건을 넣는 등의 다양한 과정을 통해 자기 슬픔을 표현하도록 돕고 추모와 애도도 하게 된다. 우리 부모들은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길 두려워한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경황이 없기 때문에 학교와 사회, 국가가 나서서 매뉴얼화하고, 공적인 돌봄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을 펴낸 이유가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림책으로 삶과 죽음을 무겁지 않게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공적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이슈를 던지기 위해서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게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그럼 지금 하고 있는 관련된 활동이 있을까?

“최근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그De함’(그데함)이라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림책으로 죽음(Death)을 함께 이야기 나누기’라는 뜻의 이름이다. 인류는 역사적 재난들을 ‘함께 이야기’ 하면서 이겨내왔고, 좋은 배움은 함께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일어난다. 관심있는 개인과 기업, 공공기관들이 ‘그De함’ 프로젝트에 동참하길 바란다. 사회는 물론 일상에서 부부끼리, 친구끼리, 부모-자녀 사이에 그림책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죽음을 사유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죽음을 겪는 학생들을 돌보는 공적 네트워크 구축도 논의하고 싶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교직 생활 동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 임경희 작가는 아이들 말고도 교사, 의사,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도 그림책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은 임 작가가 노숙인 인문대학에서 강의하는 모습. 임경희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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