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물적 분할하면 예전 회사 범죄는 자동으로 사면된다?
[경향신문]
서울고법 “분할 전 위반 행위, 신설 회사에 과징금 물릴 수 없다”
공정위 제재 취소 판결…물적 분할·M&A, 범죄 세탁에 악용 우려
하도급 업체에 대금을 주지 않은 현대중공업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물적 분할로 새로 생긴 회사에 이전 회사의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 위반 사업자가 공정위 처분을 피하려고 물적 분할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서울고법 행정7부는 현대중공업이 “제재를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지난달 30일 원고 승소판결했다. 지난해 8월 공정위는 옛 현대중공업의 대금 미지급금과 지연이자 4억5000만원을 2019년 6월 물적 분할 이후 신설된 현대중공업이 지급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옛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가 납품한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대체품 납품을 요구한 후 대금을 주지 않았고, 이후 관련 사업부가 신설된 현대중공업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은 “특별한 규정 없이는 (회사) 분할 전 위반 행위를 이유로 신설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가 하도급법상 시정조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법 위반 사업자가 공정위 처분을 피하려고 회사 분할을 악용할 수 있음에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게 된 것이다.
공정위가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분할 전 위법 행위에 대해 신설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공정위는 2013년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시정조치도 부과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하도급법은 개정하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정명령은 과징금보다 제재 수위가 낮기 때문에 충분히 제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법원에 상고한다는 방침이다.
신설 회사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에 제동이 걸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공정위는 2019년 8월 벌점이 누적 10점을 넘었다는 이유로 한화시스템에 대해 영업을 정지하고 공공사업 입찰 참가를 제한해달라고 관련 행정기관에 요청했다. 2014년 11월부터 2017년 7월 사이에 총 11.75점의 벌점이 부과된 한화S&C가 물적 분할을 거쳐 한화시스템에 합병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옛 한화S&C의 법 위반과 그로 인한 시정조치, 벌점 부과가 한화시스템에 승계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물적 분할과 인수·합병(M&A)이 법 위반 경력을 세탁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대법원에서도 패소를 하게 되면 제도 개선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본 목욕탕서 700장 이상 불법도촬한 외교관···조사 없이 ‘무사귀국’
- 서울 다세대주택서 20대 남성과 실종 신고된 10대 여성 숨진 채 발견돼
- 안현모, 이혼 후 한국 떠나려고···“두려움 있었다” (전참시)
- 아이가 실수로 깨트린 2000만원 도자기, 쿨하게 넘어간 중국 박물관
- 인감증명서 도입 110년 만에…9월30일부터 일부 온라인 발급 가능해져
- “하이브·민희진 분쟁은 멀티레이블 성장통” “K팝의 문제들 공론화”
- ‘유시민 누나’ 유시춘 EBS 이사장 사무실 압수수색
- 김신영 날린 ‘전국노래자랑’ 한달 성적은…남희석의 마이크가 무겁다
- 국가주석에 국회의장까지 권력 빅4 중 2명 숙청···격랑의 베트남 정치
- 수능 6등급도 교대 합격···상위권 문과생들 “교사 안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