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물적 분할하면 예전 회사 범죄는 자동으로 사면된다?

박상영 기자 2021. 10. 18. 21: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도급 업체 대금 4억5000만원 떼먹은 현대중공업에 '면죄부'

[경향신문]

서울고법 “분할 전 위반 행위, 신설 회사에 과징금 물릴 수 없다”
공정위 제재 취소 판결…물적 분할·M&A, 범죄 세탁에 악용 우려

하도급 업체에 대금을 주지 않은 현대중공업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물적 분할로 새로 생긴 회사에 이전 회사의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 위반 사업자가 공정위 처분을 피하려고 물적 분할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서울고법 행정7부는 현대중공업이 “제재를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지난달 30일 원고 승소판결했다. 지난해 8월 공정위는 옛 현대중공업의 대금 미지급금과 지연이자 4억5000만원을 2019년 6월 물적 분할 이후 신설된 현대중공업이 지급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옛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가 납품한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대체품 납품을 요구한 후 대금을 주지 않았고, 이후 관련 사업부가 신설된 현대중공업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은 “특별한 규정 없이는 (회사) 분할 전 위반 행위를 이유로 신설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가 하도급법상 시정조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법 위반 사업자가 공정위 처분을 피하려고 회사 분할을 악용할 수 있음에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게 된 것이다.

공정위가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분할 전 위법 행위에 대해 신설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공정위는 2013년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시정조치도 부과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하도급법은 개정하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정명령은 과징금보다 제재 수위가 낮기 때문에 충분히 제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법원에 상고한다는 방침이다.

신설 회사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에 제동이 걸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공정위는 2019년 8월 벌점이 누적 10점을 넘었다는 이유로 한화시스템에 대해 영업을 정지하고 공공사업 입찰 참가를 제한해달라고 관련 행정기관에 요청했다. 2014년 11월부터 2017년 7월 사이에 총 11.75점의 벌점이 부과된 한화S&C가 물적 분할을 거쳐 한화시스템에 합병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옛 한화S&C의 법 위반과 그로 인한 시정조치, 벌점 부과가 한화시스템에 승계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물적 분할과 인수·합병(M&A)이 법 위반 경력을 세탁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대법원에서도 패소를 하게 되면 제도 개선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