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걸프전의 주역' 美 콜린 파월, 코로나 합병증으로 별세

이벌찬 기자 2021. 10. 1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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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콜린 파월 전(前) 미국 국무장관이 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60여년 간 특수한 한미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마음을 열고 한국 측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명원 기자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84)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CNN방송이 1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파월 전 장관의 유가족은 페이스북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며 “우리는 훌륭하고 다정한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위대한 미국인을 잃었다”고 밝혔다. 파월 전 장관은 백신을 2차까지 맞은 완전 접종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2013년 3월 24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본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26일부터 열리는 본지 주최 제4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파월 전 장관은“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정권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조선일보DB

CNN방송은 “파월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 미국 외교 정책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라면서 “격동의 시기에 활동했던 최고의 외교관을 잃었다”고 했다.

파월 전 장관은 1937년 미국으로 이민한 자메이카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베트남 참전으로 군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1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미국에서 국가적인 영웅으로 부상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미국 대선후보의 물망에 오를만큼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레이건 정부시절에는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3년 2월 5일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작은 병을 들고 나와 이 병에 담을 수 있는 탄저균이라면 대량살상 능력이 있다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강조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시절인 1989년, 흑인 최초로 미 군부 최고위직인 합참의장에 올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인 2001년에는 흑인 최초로 국무장관으로 기용됐다. 파월은 미국이 해외 분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명료한 국가적 목표를 세운 뒤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해 최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른바 ‘파월 독트린’을 입안하기도 했다.

1986년 군 복무 당시의 콜린 파월. /AP연합뉴

콜린 파월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73~1974년에 동두천의 주한 미군부대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한국 근무 시) 일주일간 밤낮을 바꿔 훈련을 했는데, 부대원 700여명이 한밤중 30㎞ 행군을 끝냈던 순간은 내 평생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라고 말한 적도 있다. 회고록 ‘나의 미국 여행기(My American Journey)’에서 “한국군은 지칠 줄 모르고, 군기(軍氣)가 엄했으며, 머리도 좋았다”며 한국군의 우수함을 칭찬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방한해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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