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국민의힘 대선 경선 관전기

김민아 논설실장 2021. 10. 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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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오른쪽부터), 홍준표, 원희룡,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이 15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1대1 맞수토론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1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은 ‘양강’ 윤석열 전 검찰총장·홍준표 의원(이하 호칭 생략)의 1 대 1 대결로 주목받았다. 백전노장 홍준표가 정치 신참 윤석열을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윤석열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공격 포인트를 미리 체크해온 듯, 홍준표를 향해 ‘반사(反射)!’를 외쳤다. 1심에서 실형 받은 장모를 홍준표가 거론하자 “후보님 처남이 교도소 공사 준다고 해서 실형 받은 건 본인의 도덕성과 관계없느냐”고 역공했다.

맞수 토론이 남긴 소득은 무엇보다 윤석열의 고백이다.

홍 “검찰 외에 (경험이) 전무한데 어디에 자신 있습니까?”

윤 “한 분야의 정점까지 올라가면 어떤 일을 맡더라도 일머리라는 게 있습니다.”

홍 “검찰총장까지 했기 때문에 어느 분야 맡겨놔도 잘할 수 있다?”

윤 “네. 일하는 데는 제가 자신 있고요.”

홍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토론하면 자신 있습니까?”

윤 “자신 있습니다. 검사 생활 하면서 많은 경제 사건도 처리하고 그러면 이런저런 공부를 또 많이 하게 되고….”

김민아 논설실장

윤석열은 대통령을 검찰총장 이후 ‘인생 2모작’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직업’이 아니다. 5182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자리이자, 시대의 흐름을 내다보며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설계하는 자리다. 검찰총장이 터득한 ‘일머리’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일머리’는 차원이 다르다. 뇌물·횡령·조세포탈 사건 수사 경험은 재정·금융·산업정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홍준표는 어떤가. 당대표를 지냈고 지난 대선에 출마했다. 커리어만 보면 손색없다. 발언을 들으면 의문이 든다. 1 대 1 토론 내내 “(윤석열은 이재명과 도덕성에서) 피장파장” “(윤석열 정치경력은) 4개월” “(내 정치경력은) 26년”만 되풀이했다. 26년간 정치하며 이룬 성과는 말하지 않았다.

유승민. 콘텐츠만 따지면, 모든 주자 가운데 그를 따를 이가 없다. 그런데 지난 5일 토론회에 이어, 11일 광주·전남·전북 합동토론회에서도 윤석열을 상대로 “천공스승”만 물고 늘어졌다. 유력 대선 주자가 주술이나 미신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문제다. 그렇다고 귀한 토론 기회를 천공스승에게 헌납하는 건 안타깝다. 자신의 콘텐츠를 보여주기에도 부족한 시간 아닌가.

원희룡. 이른바 ‘대장동 1타 강사’ 영상으로 떴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자는 생각인지, 18일엔 ‘원희룡의 이재명 압송작전’이라는 유튜브 생방송을 진행했다. 경기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재명의 발언을 팩트체크하겠다는 의도였다. 대장동 의혹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며, 이재명을 포함해 모든 관련자들의 의혹은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 하지만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단계까지 오른 후보가 남의 국감 생중계라니. 경선 기간을 이렇게 흘려보내도 되나.

후보들은 반박할지 모른다. 경선은 당원과 지지층을 상대로 한다, 다른 후보를 깎아내려서라도 앞서는 게 우선이다, 당의 후보가 되고 나서 가치와 비전을 밝히면 된다….

지금 비전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도 말하기 어렵다. 각 주자가 경선 과정에서 정책공약을 공개하면 상호 토론이 이뤄지고, 전문가와 시민의 검증을 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 뼈대만 앙상하던 정책에 살과 근육이 붙는다. 본선에선 살과 근육이 붙은 튼실한 정책을 놓고 일전을 벌여야 한다.

모든 선거의 목표는 승리다. 하지만 승리에만 매몰돼선 승리하지 못한다. 내년 대선은 사실상의 1 대 1 구도가 될 테니, 정책이나 비전 따위는 무용하다고 할 텐가. 2002년과 2012년 대선도 사실상 양자 구도로 치러졌다. 승부는 간발의 차로 갈렸다. 승자에겐 시대정신을 담은 비전이 있었다.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다.

혹시 검찰총장 이후, 당대표 이후, 원내대표 이후, 제주지사 이후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게 목표라면? 지금처럼 해도 된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만큼 당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렇게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본인을 위해서나 주권자를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없나. 당 ‘해체’(윤석열)나 비례대표 ‘폐지’(홍준표), 여성가족부 ‘폐지’(유승민) 같은 것 말고, 한국 사회를 성큼 나아가게 할 ‘그 무엇’을 기다린다. 경선이 끝나고 난 뒤 조명이 꺼진 무대에 천공스승만 기억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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