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20개 늘었다.. 동남아 유니콘, 언제 이렇게 컸지?
인도네시아 물류 스타트업 J&T익스프레스는 창업 5년 만인 지난해 필리핀·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5국에서 중국 업체들을 밀어내고 택배 분야 1위에 올랐다. 택배 배송에 평균 4~5일 걸리던 동남아 시장에서 처음으로 익일(翌日) 배송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이 업체는 도로가 정비된 수도권에선 대형 트럭으로 물건을 운반하고, 비포장도로가 많은 외곽 지역엔 주요 거점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소형 배송 차량을 수백 대씩 배치해 물건을 배송한다. J&T익스프레스는 현재 기업 가치가 80억달러(약 9조5000억원)까지 치솟았고 내년 미국 나스닥 상장도 추진할 계획이다.
낙후된 인프라 탓에 창업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동남아에서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 스타트업들이 쏟아지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매체 딜스트리트아시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국에서 19개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됐다. 이는 같은 기간 인도(12개)와 이스라엘(11개), 영국(7개)의 신규 유니콘을 크게 앞서는 수치이다. 아세안의 전체 유니콘 기업(39개)도 미국·중국·인도에 이어 넷째로 많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거래 확산으로 동남아 지역 인터넷 보급이 빠르게 늘고 있는 데다, 최근 중국 정부의 기업 규제 강화로 중국을 빠져나간 글로벌 투자 자금이 몰리면서 동남아가 새로운 ‘창업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넷플릭스·페이스북 밀어낸 동남아 토종 스타트업
동남아 토종 스타트업들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아이플렉스는 지난해 8센트(약 90원)만 내면 하루 동안 무제한으로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여 인기를 모았다. 동남아 국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스마트폰 요금을 2~3일마다 소액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인터넷 연결이 고르지 않은 지역엔 저화질 영상을 공급하면서 서비스가 끊이지 않도록 했다. 이 업체의 동남아 6국 가입자는 1500만명으로 글로벌 OTT 최강자인 넷플릭스(약 1000만명)를 앞선다. 베트남 스타트업 VNG는 성조(聲調)가 많아 문자만으로 뜻을 이해하기 힘든 베트남어 특성을 고려해 자사의 모바일 메신저 ‘잘로’에 짧은 녹음 파일을 무료로 보내는 기능을 도입했다. 잘로는 베트남 모바일 메신저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른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동남아 스타트업들도 늘고 있다. 싱가포르 팻스냅은 AI(인공지능)로 전 세계 특허, 과학 논문을 분석해 테슬라·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 1만곳에 신제품 전략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 포브스는 “팻스냅이 보유한 지식재산권 데이터베이스는 전 세계 기업 중 최고 규모”라고 평가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는 인구(6억7000만명)가 유럽·북미보다 많으면서 평균 연령이 30세 안팎”이라면서 “전자상거래·모바일 앱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세대)가 많아 테크 사업이 번창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 규제로 빠져나간 투자금 대거 흡수
동남아 스타트업들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글로벌 투자 자금이 있다. 컨설팅 업체 아시아마켓엔트리에 따르면 동남아 비상장 기업이 유치한 투자금은 지난해까지 한 번도 100억달러를 넘지 않았는데, 올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172억달러(약 20조원)가 몰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 등 자국 테크 기업을 강하게 규제하면서 투자처를 잃은 벤처 투자 자금이 동남아시아로 몰렸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공동 부유’(더불어 잘살기), 반독점 규제 강화, 기업에 대한 공산당 복종 강요 정책 등으로 중국 내 벤처 투자가 크게 위축되자 글로벌 벤처캐피털들이 동남아 기업에 대거 투자하면서 이 지역 유니콘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유니콘들은 사업을 시작하고 확장하는 데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 게 가장 큰 성장 비결”이라며 “한국과 달리 기존에 없던 사업 방식이라는 이유로 사업 허가를 오래 끌거나 사업을 시작조차 못하게 하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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