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출판계 거목'의 꿈과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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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를 창업해 한국의 대표 출판사로 키워낸 고(故) 박맹호 회장의 자서전이다.
출판에 대한 그의 깊고 오랜 애정을 보여주듯 자서전 제목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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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박맹호 자서전
박맹호 지음 / 민음사 펴냄
민음사를 창업해 한국의 대표 출판사로 키워낸 고(故) 박맹호 회장의 자서전이다. 출판에 대한 그의 깊고 오랜 애정을 보여주듯 자서전 제목도 '책'이다. 충청북도 보은의 한 마을인 비룡소에서 시작해 책으로 쌓아 올린 그의 평생을 돌이켜본다. 무려 5000종이 넘는 양서를 출판하며 전문 출판의 길을 제시한 저자의 일생,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사로 성장한 민음사의 반세기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출판계를 대표하는 '원로'의 자전적 회고담은 독자들로 하여금 수십년 전 우리 문화계 현장으로 인도한다.
저자와 책의 만남이 빚어낸 많은 에피소드들이 담겨있어 흥미를 더해준다. 고은을 만나서 의기투합해 평생의 우정을 계속한 이야기, 김현·김치수 등 '문학과 지성' 그룹과 함께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 총서' 등을 기획해 시집 열풍을 불러온 이야기, 정병규를 만나 그를 디자이너의 길로 이끌고 함께 한국 책 디자인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투한 이야기,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를 둘러싼 이야기 등이 두루 실려있다.
'문학청년' 박맹호를 출판의 길로 이끈 건 공교롭게도 신춘문예 탈락이었다. 그는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자유풍속'(自由風俗)을 투고했지만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를 풍자한 탓에 일석(一席)으로 선정되고도 낙선했다. 이에 실망한 그는 출판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 한 칸에서 민음사를 창립했다. 첫 출판물은 일본책을 번역한 '요가'였다. 1만5000부가 팔리는 성공을 거뒀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연이어 책을 출판했으나 모두 실패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부인이 약국을 하면서 돈을 대다가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는 출판을 하면서 늘 반 발짝만 앞서가자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창작집, 시집을 내보고 가로쓰기를 시작한 것이 그 예다. 이는 '출판업계의 선구자'라는 말을 듣게 된 계기가 됐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끔 길을 가다 수십 층짜리 빌딩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한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 저 빌딩을 올렸을 테지만 나는 평생 책을 쌓아 올린 셈이다. 어느 쪽이 더 보람찬 인생일까." 그는 2017년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책을 사랑했고 책을 만들다가 사라졌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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