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칼럼] 언론 자율규제, 빈말로 그치지 않으려면

안재승 2021. 10. 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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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칼럼][안재승 칼럼]

언론단체들이 자율규제기구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 목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언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정 노력을 기울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다행이고 환영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자율은 타율보다 어려운 일이다. 언론에 대한 타율 규제 필요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언론계에선 자율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더 늦어지면 희망이 없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들이 ‘통합형 언론 자율규제기구’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언론계가 자율규제기구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등 7개 단체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신문·방송·인터넷을 아우르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지난 8일 6명의 언론학자로 연구위원회를 구성했다. 연구위원회는 12월 초까지 자율규제기구의 조직, 기능, 권한 등 설립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언론단체들이 지금 왜 자율규제기구 설립에 나섰는가는 기자회견문에 명확히 나와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신문, 방송, 인터넷신문을 대표하는 사업자단체와 현업 언론단체들은 오보 등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에게 제때, 충분하게 사과하고 신속하게 잘못을 바로잡는 데 소홀했고, 이런 잘못이 언론의 불신을 불러왔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 목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언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정 노력을 기울이자고 의견을 모았다“며 “이를 위해 정치권에 해결 방안을 맡길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실효적인 자율 규제 체제를 만들어 자기 교정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잘못된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언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겸허한 반성과 결연한 의지가 읽힌다. 늦었지만 다행이고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자율은 타율보다 어려운 일이다.

언론계는 이미 자율규제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기자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신문협회가 만든 60년 역사의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신문협회 회원사를 비롯해 112개 신문·통신사와 서약을 맺고 신문윤리강령에 근거해 이들 매체의 종이신문과 인터넷의 기사·광고를 심의하고 있다. 2012년엔 인터넷신문위원회가 만들어져 828개 인터넷신문사들의 기사·광고를 심의한다.

이렇게 자율규제기구들이 있는데도 언론단체들이 새로 자율규제기구를 만들기로 한 것은 기존 자율규제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다. 신문윤리위원회가 열심히 심의를 해서 제재를 해도 실질적 불이익이 없는 탓에 언론사들이 뭉개버린다. 규제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신문위원회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가짜뉴스. 게티이미지뱅크

결국 새 자율규제기구의 성패를 가를 관건은 제재의 실효성이다. 규제를 하는데도 따르지 않는다면 타율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자율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언론단체들은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포털과의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기사의 영향력과 언론사 수익에서 포털 노출이 결정적이라는 점에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연합뉴스> 기사가 최근 한달 동안 네이버와 다음 등에서 사라진 일이 있다. 편집국 밖 홍보사업팀에서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고 만든 ‘보도자료’ 콘텐츠를 ‘뉴스’ 콘텐츠인 것처럼 포털에 전송했다는 이유로 이런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평판 실추와 매출 감소로 연합뉴스는 큰 타격을 받았다. 다만 포털은 콘텐츠 제공 언론사의 ‘계약 위반 사항’만 문제 삼을 뿐 허위보도나 선정보도 같은 기사 전반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실제로는 언론의 기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외면하고 있는 포털도 언론단체들의 자율규제에 협조해 일부나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자율규제기구로부터 제재를 받은 언론사가 자사 지면이나 인터넷에 제재 내용을 상세히 싣도록 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제재 내용과 그 이유를 독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재하도록 하면 큰 자극이 되고 예방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자율규제가 성과를 내려면 제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언론윤리를 충실히 지키는 언론사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신문윤리위원회의 심의에는 이런 인센티브가 없다. 언론사라면 윤리강령 준수가 당연한 일이지만, 클릭 수를 올리려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언론사가 있는가 하면 클릭 수를 포기하더라도 언론의 정도를 지키는 언론사도 있다. 이런 언론사에 인센티브를 준다면 자율규제가 포지티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의 공익광고 배정에서 우대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제재와 인센티브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신상필벌이 분명해야 한다. 제재는 엄격하고, 인센티브는 가시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개별 언론사들의 자체 자율규제 강화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내부 심의를 통과한 콘텐츠만 배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클릭 수를 올려 얻는 이득보다 규제로 받는 손실이 크다는 게 명확하면 규제를 어길 언론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언론사들이 자율규제에 참여하느냐도 중요하다. 다수의 언론사, 특히 주요 언론사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런 점에서 자율규제를 일종의 사회적 합의인 ‘언론계 협약’으로 제정해 ‘대국민 약속’을 할 필요가 있다. 참여하지 않는 언론사는 스스로 ‘문제 언론’임을 자인하게 만들고, 참여 언론사 중 심각한 위반을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 자격을 박탈한다. 기자협회나 신문협회에서 제명하는 것이다. 축구의 레드카드와 같다. 이 정도는 돼야 국민들이 자율규제의 진정성을 믿을 것이다.

언론에 대한 타율 규제 필요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언론계에선 자율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더 늦어지면 희망이 없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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