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들로 인간을 들여다본다..부산바다미술제 개막

김종목 기자 입력 2021. 10. 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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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1부산바다미술제에 나온 작품 중 ‘바다’라는 장소에 부합하는 것은 김경화의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알 하나가 모래 사장에 박혀 있다. 해변에서 모래를 파고 알을 낳은 거북이의 그것일까. 3m 높이의 거대한 검은 알 형상의 이 작품은 버려진 자개농에서 조각들을 떼어내 다시 붙인 것이다. 자개 파편들에는 각각 자연 풍경, 모란, 상록수, 봉황이 새겨졌다. 파편의 재조합으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인간의 생활상과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모습”이다.

김경화,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2021, 자개,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300 x 220 x 220 cm. 김종목 기자

16일 부산 기장군 일광해수욕장에서 개막한 올해 미술제(11월14일까지)의 주제는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다. 주최자인 부산비엔날레 측은 ‘다양한 물체들이 조합된 입체적 형태’를 가리키는 미술용어인 ‘아상블라주’를 두고 “단순한 결합이 아닌 인간과 예술, 생태, 제도, 상호작용 등을 포함하는 비인간적 요소들과의 결합으로 확장된 의미”라고 했다.

오태원, ‘영혼의 드롭스’, 2021, 특수 강화 비닐, 오로라필름, 각 600 x 400 x 400cm. “광활한 바다와 대조되어 멈춰 있는 한 방울의 물은 우리가 흘리는 땀이나 눈물에서부터 나아가 강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맞닿아 있는 생명 공통의 요소를 일깨워 준다”(바다미술제 출품작 설명 중).김종목 기자

13개국 22팀(36명)의 작가들이 22점을 내놓았다. 필리핀 작가 리로이 뉴의 ‘아니토’는 미술제의 주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플라스틱 병과 대나무가 주 재료인 이 작품은 부자 나라들의 폐기물이 가난한 나라로 흘러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작가는 부산의 재활용 선별장에서 플라스틱 용품을 수거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아니토’는 조상의 영혼, 자연의 영혼 등을 뜻하는 필리핀 말이다.

리 쿠에이치, ‘태동’, 2021,대나무, 340 x 600 x 2000 cm. “얼기설기 얽혀진 대나무는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철저히 분리하기보다는 직조된 결들 사이 틈을 바다에게 내주어 관객들을 잉태 혹은 액체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인간과 바다와 작품이 서로 조우하며 어우러지는 아상블라주의 공간에서 우리는 이질적이라 생각했던 비인간적인 요소들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충돌하기보다는 우리와 공존하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된다.”(바다미술제 출품작 설명 중) 김종목 기자

인도, 필리핀, 독일,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 6개국 작가들이 팀을 이룬 포레스트 커리큘럼의 작품은 좀 더 급진적이다. ‘유랑하는 베스티아리’는 포레스트 커리큘럼 팀이 동남아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 등 ‘비인간 존재’를 각각 14개 깃발에 그린 작품이다. 태국 방콕과 한국 파주에서 채집된 고음역대의 풀벌레 소리, 인도네시아의 경주용 비둘기들의 소리, 지방정부 선거를 앞두고 재정 부패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불필요한 공사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을 담은 사운드도 설치했다. “국민국가가 국가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주변부를 희생시키고 또 다른 해악과 탄압을 일삼았던 행태에 비인간 존재들이 저항해온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포레스트 커리큘럼, ‘유랑하는 베스티아리’, 2021, 천에 프린트, 스테인리스 스틸, 사운드, 600 x 700 x 700 cm. 김종목 기자

최한진의 ‘트랜스’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생물학적 경계를 넘나들고 나아가 기계와 결합된 새로운 인간 종”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좌대를 포함해 5.5m 높이의 스테인리스스틸 조각이 일광 바다를 배경으로 설치됐다.

해변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평면, 영상, 미디어 파사드 같은 여러 매체를 활용한 작품도 선보인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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