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생활시간'을 허하라!

한겨레 2021. 10.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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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방준식ㅣ영산대 법학과 교수

한때 ‘세븐-일레븐’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침 7시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일상을 빗댄 표현이다. 요즘에도 직장인 사이에서 번아웃, 소진, 탈진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이는데, 그만큼 과로에 시달리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심장마비로 사망할 위험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견줘 67%나 높다는 연구 결과(미카 키비메키, 핀란드 직업건강연구소)가 말해주듯, 한국 사회도 1일 최장 근로시간을 10시간(최대 11시간)으로 제한하는 논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직장인의 ‘생활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보면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을 넘길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1일 최장 근로시간에 대한 별도의 제한 규정은 없다.

물론 근로기준법에 1일 최장 근로시간 제한 규정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1996년 탄력근로제 도입과 함께 ‘1일 최장 12시간’의 규정이 생겼으나, 이듬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3개월 이상의 탄력근로제에만 해당 규정을 적용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59조를 보면 운송업이나 보건업과 같이 장시간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경우,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연속하여 1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화물운송기사나 간호사에게 하루 15시간 내지 20시간 이상을 일을 시킨 뒤에는, 적어도 11시간 이상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휴식시간 규정 등은 일부 업종이나 근무제에만 해당하는 특례규정으로서 대다수 직장인의 1일 최장 근로시간의 제한과는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직장에서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어느 조사에 따르면, 10시간이 넘어가면 인간의 노동효율성도 떨어진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2016년 노동개혁법을 통해 1일 최장 10시간 근로시간 원칙을 입법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위해서라도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10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 10시간이라고 해도 아침 9시 출근이면 휴게시간 제외하고 일러야 저녁 8시에 퇴근한다는 것 아닌가!

무릇 ‘생활시간’이란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으로, 휴식뿐만 아니라 가정생활 및 사회생활까지 포함하여 보장하는 시간이다. ‘저녁이 있는 삶’, 즉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너무도 절실한 시간이다. 그리고 노동자가 이러한 생활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노동자가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생활시간이 개인적 성격이 아닌 사회적 성격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현재 육아기에 있는 여성 노동자에게만 인정되는 권리다. 그러나 생활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하여 근로시간 단축권을 인정했으면 한다. 육아기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육아기 남성 노동자한테도 근로시간 단축권이 필요하고, 자기계발이나 자원봉사와 같은 사회 활동을 하는 노동자도 생활시간의 확보를 위해서 근로시간 단축을 필요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자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통해 소득을 높이고자 하는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든, 단순히 가계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일을 하든 노동시간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노동시간의 단축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돈을 좇아 목숨을 건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장시간 노동은 심한 경우 개인과 가정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마침내 사회에서 탈락될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근로기준법을 처음 제정하여 근로시간을 규제한 것은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이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제는 근로자의 생활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근로시간 규제의 목적에 포함시켜야 한다. 근로자는 자신의 건강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사용자는 근로자의 건강을 배려해야 할 의무로서 생활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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