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냉전' 이어 미-중 '인공지능 냉전' 시대 오는가

박현 2021. 10.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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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G2 기술패권]박현의 G2 기술패권 _04

미-중 경쟁에서 가장 위태로운 부분은 군사 영역이다. 두 나라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무기체계 선점을 위해 사실상 인공지능 군비경쟁에 들어간 상태다. 인공지능 군비경쟁은 20세기 초반 영-독 간 군함 건조 경쟁, 냉전 시기 미-소 간 핵무기 경쟁에 비견되기도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둘째)은 2017년 10월18일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행한 3시간24분에 걸친 기념비적 연설에서 인공지능을 선진국 도약을 위한 핵심 기술로 처음 언급했다. 사진은 당시 행사장에 입장하는 모습으로, 후진타오 전 주석(왼쪽)과 91살의 장쩌민 전 주석(오른쪽)도 참석했다. 베이징/연합뉴스

2016년 3월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세기적 사건이었다. 이세돌의 패전은 알파고를 만든 미국보다 바둑의 탄생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중국을 더 충격에 빠뜨렸다. 중국인 2억8천만명이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 대국을 시청했다고 한다. 당시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있었던 리카이푸 전 구글 차이나 사장은 저서 <ai(에이아이) 슈퍼파워="">에서 “하룻밤 사이에 중국은 인공지능 열풍에 휩싸였다”고 회상했다.

이듬해인 2017년 7월 중국 정부는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인공지능 선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원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어 10월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나섰다. 시 주석은 무려 3시간24분에 걸친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선진국으로 전환시킬 대표적인 핵심기술로 인공지능을 꼽았다. 리카이푸는 “알파고가 중국의 ‘스푸트니크 모멘트(순간)’라면, 중국 정부의 인공지능 계획은 미국인들에게 달 착륙을 약속했던 존 에프(F) 케네디 대통령의 기념비적 연설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인공지능 열기는 2018년 7월 베이징을 방문했던 기자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는 동영상 앱 틱톡으로 유명해졌는데, 틱톡의 성공 비결은 이용자의 선호도를 신속히 파악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있었다. 이 회사에 들어서니 캐주얼한 차림의 젊은 직원들로 북적였다. 안내자는 창업 6년 만에 직원이 2만명으로 늘었으며, 직원의 80% 이상이 20대라고 소개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복잡한 수학 계산을 끄적인 메모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중국 젊은이들이 인공지능의 상업적 적용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지난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틱톡 미국 현지법인의 매각을 명령했을 때, 양국 간에는 이 회사의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술 이전을 놓고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언론사도 인공지능 연구에 열심이었다. <신화통신>은 당시 인공지능을 이용한 보도를 실험하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실제로 그해 말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앵커’를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화웨이 제재로 포문을 연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반도체를 거쳐 인공지능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에서 일정한 패턴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여 적합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 신기술은 다양하다. 컴퓨터 이미지 분석, 얼굴·음성·보행 같은 생체 인식기술, 자연어 처리, 대규모 데이터베이스 검색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제조·운송·의료·금융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되면서 생산성을 끌어올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치 1세기 전 전기가 발명된 이후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되면서 2차 산업혁명을 추동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라는 얘기다.

군사적으로도 활용도가 매우 높아 미래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 수집해 표적의 식별과 판단, 공격까지의 과정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한다. 현재는 임무 수행의 일정 단계마다 인간이 개입하는 자동 단계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도 자율적으로 목표를 확인해 공격하는 완전 자율무기체계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킬러로봇이나 드론 떼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신속성과 정확성, 엄청난 파괴력 등의 특징 때문에 인공지능 무기는 화약, 핵무기에 이은 제3차 무기혁명으로도 일컬어진다. 방산업체인 레이시언 출신의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은 2019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은 전쟁의 성격을 바꿀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먼저 통달한 자가 많은, 많은, 많은 해 동안 전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은 로봇의 전장 투입 목표를 2025년으로 잡고 있다.

인공지능 경쟁의 승패는 빠른 연산능력과 방대한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성능 연산능력은 속도를,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정확도를 높인다. 연산능력이 인공지능의 엔진이라면 데이터는 연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중의 경쟁도 이 두가지를 빨리 확보하고 상대방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2019년 중국 최대 슈퍼컴퓨터 제조사인 중커수광, 대표적인 음성·안면인식 업체인 커다쉰페이(아이플라이텍), 상탕커지(센스타임) 등을 수출통제 제재 명단에 올린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인 올해 4월에도 슈퍼컴퓨터 기업 7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슈퍼컴퓨터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 필수적이다.

중국은 강점을 갖고 있는 데이터 통제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데이터 보안법’은 플랫폼 기업 통제 강화 차원도 있으나, 데이터를 둘러싼 미-중 경쟁에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다. 중국 정부는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이 중국 내 교통 데이터를 외국에 넘겼다며 보안 조사에 착수했는데 이 법과 관련이 깊다.

인공지능 경쟁에서 어느 나라가 앞서고 있을까. 인공지능 주요 경쟁력 지표에서 미국은 전반적으로 중국을 앞서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이 올해 1월 내놓은 보고서(‘누가 인공지능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가: 중국, 유럽연합, 미국’)를 보면, 미국은 발전기반·인재·연구·하드웨어 등 4개 분야에서 우위인 반면에, 중국은 도입·데이터 분야에서 미국을 앞섰다. 데이터의 경우 2019년 모바일 결제를 하는 가입자 수는 중국이 5억7700만명으로 미국(6400만명)보다 9배나 많았다. 전체 성적을 점수로 환산(100점 만점)하면, 미국이 44.6점, 중국은 32점이었다. 유럽연합은 23.3점으로 한참 뒤떨어졌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여전히 중국에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으나 중국이 일부 중요한 분야에서 격차를 축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달 초 미 공군의 소프트웨어 최고책임자인 니컬러스 셰일런의 항의성 사임은 미-중 기술 경쟁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료주의 탓에 미군의 기술 전환이 너무 더디다는 게 사임 이유였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인공지능, 사이버 역량 진전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15~20년 후에는 중국에 대항해 싸울 능력이 없다. 내 생각에는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말했다. 2019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국방수권법’에 따라 설립된 초당적 기구인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NSCAI)도 올해 3월 백악관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앞으로 10년 내 중국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며, 백악관에 기술경쟁력위원회를 설치해 인재 확보, 핵심 기술 개발, 기술동맹 구축 등을 주도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응전이 성과를 낼지 여부는 민간의 혁신 역량과 정부의 지원이 시너지를 얼마나 내느냐에 달려 있다.

미-중 경쟁에서 가장 위태로운 부분은 군사 영역이다. 두 나라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무기체계 선점을 위해 사실상 인공지능 군비경쟁에 들어간 상태다. 인공지능 군비경쟁은 20세기 초반 영-독 간 군함 건조 경쟁, 냉전 시기 미-소 간 핵무기 경쟁에 비견되기도 한다. 핵 냉전 시대엔 한쪽의 핵 선제공격 시 다른 한쪽이 남은 핵 전력으로 상대를 보복해 둘 다 괴멸적 타격을 입는 이른바 ‘상호확증파괴’ 전략으로 인해 서로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는 억지력이 작동했다. 그런데 인공지능 무기는 공격원 추적의 난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개발 비용과 기술 습득의 용이성 등의 특성으로 인해 이런 억지력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전투에서 삶과 죽음의 결정권을 기계에게 맡길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문제까지 제기된다.

강대국들은 이런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유엔이 2014년부터 관련 국제협약 체결을 논의하고 있는 데 대해, 미국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위원회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무기체계의 글로벌 금지를 지지하지 않는다.” 무엇이 자율무기체계에 해당하는지 정의하기 어렵고, 기술적 복잡성 탓에 합의 이행을 검증하기 힘들며, 중·러 같은 나라의 약속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바야흐로 미-중 간 ‘인공지능 냉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박현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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