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미신 논란'이 놓친 것

한겨레 2021. 10.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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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티브이(TV) 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 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지난 1일 엠비엔(MBN) 주최로 열린 5차 티브이 토론회에서 윤 전 총장이 홍준표 의원과의 일대일 주도권 토론에서 손을 흔드는 제스처를 하면서 손바닥에 적힌 ‘왕’ 자가 선명하게 포착됐다. 엠비엔 유튜브 갈무리/연합뉴스

[세상읽기] 한승훈ㅣ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최근 몇주간 ‘고발 사주’ 의혹과 대장동 논란을 제외한 대선 관련 이슈들을 살펴보았다. 대다수는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되어 있다. 그의 경쟁자들은 윤석열이 ‘항문침 전문가’를 가까이 한다거나, 스스로 차원계를 넘나드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천공스승’ 같은 인물을 멘토로 삼고 있다며 공격하였다. 그러고 보니 논란이 되었던 그의 배우자 김건희의 박사 논문 주제도 온라인 ‘운세’ 콘텐츠다. 무엇보다 그가 토론회 때 손바닥에 써 오던 ‘왕’(王) 자는, 대중이 윤석열이 뭔가 수상하고 음침한 세계에 빠져 있다고 여기게 된 치명적인 계기였다.

많은 시민과 미디어 관계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문제는, 대선 후보와 연루되는 이 수상한 기표들이 대체 무슨 범주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다. 주술, 역술, 무속과 같은 현상들은 분명 넓은 의미에서 종교적이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종교라는 개념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통속적인 종교 개념은 대단히 협소해서 ‘정상적’인 제도종교에서 일탈한 무언가가 교단 비슷한 조직을 갖추고 있으면 ‘사이비’가 되고, 그런 것조차 없으면 ‘미신’이라 분류된다. 그러니 사실 직업 정치인들의 종교적 자유에는 몇가지 암묵적인 제약이 걸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인이 종교 소속을 가지거나, 종교인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권장되지만, 종교 범주를 벗어나 종교적 영역들에 관련되는 것은 수치스럽게 여겨진다.

이런 구도 속에서 이번 윤석열 비판에 숱하게 등장한 ‘무속’이라는 말은 다소 애매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무속을 엄밀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무당이라는 종교전문인이 개입되지 않은 현상들까지 무속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종교와 미신에 대한 근대적 구분이 도입된 이래, 무속은 종종 한국의 미신 영역을 대표하는 표상으로 취급되어왔다. 무속이 민족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전통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거나, 무속이라는 말 대신 ‘무교’라는 독립된 종교로 불러야 한다는 등의 대안 담론들이 꾸준히 제기되어왔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공적 논의에서 무속과 미신은 호환 가능한 개념으로 남아 있다.

일본 나가사키외국어대학의 신자토 요시노부 교수는 최근 발표한 ‘‘최순실 게이트’의 무속 담론’이라는 논문에서 마치 이번 사태를 예측한 듯한 전망을 하고 있다.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개신교 신자였으며, 그와 무속·점복 등을 연관시켰던 많은 의혹은 상당히 이른 단계에 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 연구자들과 당사자인 무속인 단체는 무속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당의 사상적 기반과는 관계없이 무속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 (…)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정치적 반대자를 미신 영역으로 간주되는 범주(이를테면 무속)와 결부시키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공격 방식인지가 박근혜 탄핵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극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윤석열이 미신 담론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 행동이다. 그는 손바닥 글자와 역술인 멘토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10월10일, 성경책을 들고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 기도를 하고 손뼉을 치며 예배에 참여하였다. 미신의 반대는 종교, 특히 개신교라는 사인을 보낸 셈이다.

그러나 이 퍼포먼스는 그의 판단력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트리는 선택이었다. 주술이나 점복을 믿는 것이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역술인을 가까이하는 공직 후보자를 꺼리는 이유는 그것이 ‘정상적’인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인물은 많은 사람의 이해가 걸린 공적 문제를 판단할 때 전문가나 당사자가 아닌 엉뚱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가 천공스승의 가르침 대신 주요 종교 지도자들의 조언을 진지하게 듣는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대통령 후보에 대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종교를 믿는지 미신을 믿는지가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타당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다. 그렇지 않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경험들을,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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