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아파트값 7억 넘은지 언젠데..증여공제 고작 5천만원
日선 주택자금 1억2천만원 공제.."부의 이전 활성화 검토할때"
◆ 현실과 동떨어진 증여·상속세 (上) ◆
최근 몇 년 새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증여세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4~5년 전에는 자녀가 모은 소득과 은행 대출, 부모의 금전적 지원을 보태면 살 집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집값이 몇 배로 뛰고 대출받기가 까다로워지자 억대의 금전적 지원을 고려하는 부모가 많아지고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현실에 맞게 증여 공제 기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세법상 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증여할 때 공제 한도는 10년 합산 5000만원이다. 미성년 자녀는 10년 합산 2000만원이다. 이 금액을 초과하는 증여 금액에 대해서는 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10~50%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2015년 9월 3억6000만원에서 2021년 9월 기준 7억6300만원으로 두 배 이상이 됐다. 같은 기간에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2억6100만원에서 4억5000만원으로 치솟았다. 반면 자녀에 대한 증여 공제 한도는 2015년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된 뒤 현재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집값이 사회초년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나면서 자녀의 결혼과 부(富)의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부모 증여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세제실장을 지냈던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10년간 5000만원 공제는 현실적으로 작은 게 사실"이라며 "이 문제로 많은 국민이 고민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해 공제액 상향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 수준으로는 자녀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만큼 증여 한도를 키우는 방안을 모색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다만 부의 대물림과 불평등 심화 논란이 불거질 수 있으므로 증여가 가능한 부모에게 기회를 넓혀주되, 저소득층 대상으로는 임대주택 지원 등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는 방안이 거론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직계 존속에 대한 기본증여 공제액 외에 주택취득자금에 대한 공제를 최대 1200만엔(약 1억2400만원)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교육자금은 1500만엔(약 1억5500만원)까지 무상 증여가 가능하다. 고령사회가 된 일본이 노인층에만 축적된 부가 머물지 않고 젊은 층에 유입되도록 유도해 경제 활력과 출산율을 제고하는 세제 지원책을 펴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초라한 韓공제
일본 매년 1140만원 기본 공제
주택·교육·결혼…별도로 혜택
美·日은 증여로 부의 이전 유도
투자·기부 등 경제활력 촉매로
한국, 증여세율 완화 어렵다면
공제한도 확대가 대안 될수도
"1억원으로 인상 검토해볼만"
부모 등 가족의 도움을 받아 집을 마련하는 젊은 층 가운데 증여세를 얻어맞는 사례가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단기간 집값이 치솟으면서 증여 공제 한도와 집값 사이의 괴리가 커진 만큼 '부모 찬스'를 이용하지 않고는 집을 구입하거나 전세를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탓이다.
증여가 부의 대물림을 조장하고 자산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큰 탓에 세제 개편 논의는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등 자산가격 급등에 따라 증여세는 더 이상 소수 부유층만의 세금이 아닌 상황이 됐다. 이제는 '부(富)의 이전' 규모를 좀 더 확대해주는 방안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장 상속·증여세율을 낮추는 게 국민 정서상 어렵다면, 상속·증여 공제 한도를 넓히는 게 합리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미국은 연방정부에 납부하는 자녀 상속·증여세의 통합 공제 한도가 부모 1인당 총 1170만달러(138억원)에 달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의 최대치를 자녀에게 상속·증여했을 때 총 2340만달러(276억원)를 세금 한 푼 안 내고 넘겨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초고액 부자들에 대해서는 증여세(40%)를 내도록 하되, 웬만한 국민은 다음 세대로 부의 이전을 자유롭게 허용한 셈이다.
미국은 자유로운 부의 이전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경제 효과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베이비부머와 고령층이 보유한 천문학적 자산이 후손들에게 활발히 이전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이 이전된 부를 활용해 창업, 자선단체 지원, 주택 구입 등 경제적 활동을 촉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반면 한국은 공제 규모 자체가 작다 보니 국민 사이에서 자녀가 30세가 될 때까지 1억4000만원을 증여세 없이 증여하는 방법이 '절세팁'으로 통하는 슬픈 현실이다. 태어나자마자 2000만원, 열 살에 2000만원, 성인이 된 후 스무 살에 5000만원, 서른 살에 5000만원을 증여하면 1억4000만원을 증여세 없이 절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속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본도 주택 취득과 교육 등 여러 항목에서 폭넓은 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처럼 10년 합산이 아닌 매년 110만엔(1140만원)의 증여 공제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기본공제 외에 증여 목적별로 별도의 공제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2012년 처음 도입한 주택취득자금 공제는 최대 1200만엔(1억2400만원)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교육자금은 1500만엔(1억5500만원), 결혼·육아자금은 1000만엔(1억원)을 각각 공제해준다.
김영룡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고령층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세대 간 부의 이동 수요가 점점 확대될 것"이라며 "세제 혜택으로 부의 이전을 가속화해 경제 활력을 키운 미국과 같이 한국도 세제 개편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세정당국 관계자는 "현재 5000만원에 머물러 있는 증여세 공제 한도를 1억원 수준으로 올리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 관계자는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증여 공제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양도소득세 회피를 위해 증여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났으니 편법 증여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한다"며 "세율, 과세표준, 공제액 등 전체적인 틀에서 다른 나라 사례를 모니터링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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