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영화가 답이다

입력 2021. 10. 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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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 농어촌 파괴형 풍력·태양광을 넘어

[정학철 전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2020년 54일간의 장마와 폭우가 이어졌다. 여기저기 수해 피해가 발생했으며, 쌀 생산량 52년 만에 최저였다. 2021년에는 유례없는 한파와 폭설에 이어, 7월 지구 기온이 142년 관측 사상 가장 더웠다. 동토의 땅 시베리아의 5월 기온이 39도까지 치솟았고 그리스, 터키, 스페인, 포르투칼, 알제리, 모로코 등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기후위기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기후위기 관련 국제적 논의는 1992년 리우환경정상회담과 1997년 교토의정서, 2009년 코펜하겐합의, 2015년 파리협정, 2017년 인천송도회의, 2021년 글래스고회의로 이어져 오고 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는 전 세계가 기온 상승을 2℃내에서 막기로 결의하였고, 문재인 정부는 작년 10월에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선언을 발표하면서 3020정책,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그린뉴딜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은 자본주의와 기업에 있다

지난 250여 년 동안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3%가 90개의 '탄소 메이저'로부터 나왔다. 더군다나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의 71%를 25개 공공 및 민간 기업, 그리고 이들의 자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기후위기를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할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기후위기의 주범인 기업에게 면죄부를 줄 뿐 아니라 오히려 신재생에너지를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기업에게 에너지 주권마저 갖다 바치고 있다. 기후철학과 기후정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자본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것일 뿐이다.

돈벌이 수단이 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대규모 프로젝트로 진행하면서 대기업 중심으로 민영화 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대기업은 반성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여기에 공기업도 민간기업 못지않게 성과주의와 이윤추구에 매몰되어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절대선으로 합리화하면서 죄책감 없이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협박하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이장들에게 금품을 살포하고, 15년 전에 사망한 사람이 부활해 발전사업에 찬성하는 서명을 하고, 집에서 300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풍력발전 시설 공사가 시작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농어촌에 들어서는 풍력, 태양광 발전시설은 기업의 탐욕만 채우면서 주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자본과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황금 들판 뒤덮은 태양광!

지금 농촌의 들녘은 본격적인 수확철을 맞아 분주하다. 하지만 더이상 황금빛 들판이 아니다. 태양광 패널로 가득한 들녘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간척지의 경우 태양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식량안보를 이유로 자연의 보고인 갯벌을 개간하여 간척지를 만들었다. 갯벌은 생태계를 보전하고 자연의 콩팥이라고 불릴 정도의 정화기능을 하는 등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어민들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정부는 2019년 농지법을 개정하여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질적으로 우수한 농지를 보전하기 위해 법률에 의해 비농업용으로 전용되는 것이 엄격히 규제되어 있는 농지)인 간척지에 염해피해가 있으면 20년 동안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농지법이 개정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벼농사를 잘 지어온 간척지가 염해농지가 되어 태양광이 설치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광이 설치된 간척지를 20년 후에 논으로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다

작년에 있었던 54일간의 장마와 폭우는, 구례를 비롯한 많은 지역을 수마가 할퀴고 지나갔고, 쌀 생산량은 5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년 반복되는 농작물에 대한 자연재해는 농민들을 시름에 잠기게 하고, 소비자들은 가벼워진 주머니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다.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 식량자급률이 21%(2019년 기준)인 나라에서 농민들의 삶터인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간척지에 농사를 짓던 농민들의 60% 이상이 임차농이다. 간척지 태양광으로 인해 농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삶터에서 쫓겨나는 것이고, 국민들은 식량안보를 위협받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정책과 자본가들의 탐욕이 일치하여 전국의 모든 산, 바다, 들녘이 재생에너지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화력발전, 송전탑, 송전선로 등의 문제까지 더해져 농어촌의 파괴는 심각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갈등으로 인한 분쟁지역이 확산되고 있으며,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하고 있다. 에너지 개발을 명분으로 한 정부와 개발업자들의 일방적 추진은, 지역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를 진행하게 하고, 지역 주민들은 외롭고 눈물겹게 고향을 지키고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도 없고, 방안도 없다 보니, 업자의 횡포(매수, 회유, 협박, 소송 등)는 심각해지고, 법과 제도는 주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분쟁지역 피해 주민들은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게 되었다. 갈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만은 확산되고 풍력과 태양광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인식이 확대되며, 풍력과 태양광은 꼴도 보기 싫은 혐오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일방적 사업 추진과 갈등 해결 방안 부재는 원전 옹호 세력에게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원전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고 더 환경 파괴적이라는 명분으로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여론몰이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산 정상까지, 뒷동산에서 절대농지까지, 지금 풍력과 태양광으로 농어촌의 생태계와 아름다운 풍경은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다. 바람과 햇빛, 산과 바다, 들과 물 등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더구나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은 절대 아니다. 자본가 몇 사람이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자연을 독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자연 이치를 배반하는 것이다. 전국의 고운 살결이 찢기고 벗겨지고 있는 상황인데,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신재생에너지가 정의롭고 지속가능 할 수 있을까? 생태계와 마을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의무화하고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자

2020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최근 10년간 용도별 전력소비량 비중을 보면 산업용이 53.8%, 상업용이 32.7%, 주택용이 13.5%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전기를 이용해 용광로에서 철을 녹여 제품을 생산한다. 그런데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한 장도 보이지 않는다. 왜? 전기요금이 너무 싸기 때문에 굳이 재생에너지 생산에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체 전력소비량의 87%를 차지하는 기업들에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의무화하고, 재생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전기요금 단가를 차등 적용한다면 전국의 공장과 건물 위는 태양광 패널로 가득할 것이다.

지역사회부터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자

전기는 일하고 생활하는 장소에서 사용한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인 대형 발전소에서 생산해 지역으로 분배하는 정책을 바꿔야 한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원료 수입, 환경오염, 환경파괴 등이 발생하는 중앙집중식 에너지 생산 체계에서 분산 에너지 생산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에너지는 이동 거리가 짧을수록 환경파괴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가 근접해야 효율성이 좋고, 전환 과정을 축소할 수 있으며 유휴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우리 마을, 우리 아파트부터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 그리고 시·군·구와 광역시·도별 에너지 자립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논의기구를 만들자. 지역사회에서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는 비율에 따라 정부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적극 독려하자.

기업과 수도권이 무조건 에너지를 자립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수도권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농어촌지역을 파괴하는 방식과 돈벌이 수단이 된 에너지 정책을 바꾸자는 것이다. 기업과 수도권에서도 에너지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부족한 전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국가 차원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에너지 주권을 확립하고 공영화를 실현하자

에너지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필수요소이므로 에너지 정책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지역사회와 정부 차원의 에너지 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난개발과 환경파괴가 아니라, 생태보전형, 경관보전형,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에너지 주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개발하고 운영, 분배하는 전 과정은 정부와 국민에 의해 통제되는 에너지 주권을 실현해야 한다.

전국의 고속도로를 비롯한 도로 방음벽과 지붕에, 철로 방음벽과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주변 주민들은 소음으로부터 해방되고, 추가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도 없고, 토지를 매입하기 위한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미래 에너지인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발전권을 대기업 등 자본이 독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사업 초기부터 공영화의 길로 가면서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1차적 향유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가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는 정의로운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이 중요하다. 국민이 동의하는 에너지 정책의 올바른 방향이 정해지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탄중위해체공대위 연속 기고>

1. 우리는 왜 '탄소중립위 해체'를 외치는가?
2. 이제는 '탄소중립'을 넘어서야 한다
3. "문재인 정부에는 정의로운 전환이 없다"

[정학철 전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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