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수의 삼라만상 38] 탈출을 못하고 있는 내 '산 101번지'

정리=박명기 기자 2021. 10. 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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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 이상 이사한 어릴적.. 쉴 수 있는 산허리 아래 작은 집 하나 또 꿈

산(山) 101번지-

내 청년기 때 까지의 궁핍한 시절이 질려서 군 제대 후 스스로 자립하기 위하여 탈출하듯 산 101번지를 떠났다.

산 101번지...山이란 단어가 들어간 만큼 산은 내가 좋아하는 산의 높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집은 나름대로 山이라는 단어에 맞는 꽤 높은 위치에 있었다. 

적어도 63빌딩 높이 정도의 위치에 있었으니 내가 살던 마을은 동산이 아니라 분명 山이었다.

그렇게 어느 날 나는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 서울 합정동에서 5년, 그리고 결혼 후 경기도 과천에서 3년, 다시 서울 방배동에서 25년,  그리고 살던 곳을 세를 내주고 현재 서울 봉천동 서울대역 근처 주택과 아파트에서 각각 5년, 그리고 다시 올해 베짱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몇 년을 더 보낼 생각이다.

살아가며 여우굴처럼 옮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호랑이처럼 한 굴에서만 사는 사람이 있다.

1960년대 말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평생 집을 가지지 못하셨다. 그러다보니 여우굴처럼 새끼들을 데리고 스무 번 이상을 이사를 다녔다. 

나는 서로 부대끼며 사는 좁은 집이 싫어 총각 때 합정동에 처음 집을 얻어간 집이 방이 세 개나 되는 집을 얻었다. 

중국 상하이에서 작업을 할 때도 중국인들에게 나는 큰 집을 요구해서 몇 명의 직원들이 같이 지내는 아파트보다 쓸모없이 훨씬 넓게 지냈다.

중국 쿤산에서는 방이 8개나 있는 복층 아파트를 쿤산 정부에 요구해서 혼자 살았는데 생각해보면 공짜로 사는 집이지만 귀곡산장 같은 곳에서 필요없는 공간을 혼자 놀린 격이다.

당시 현관 문을 열고 제일 가까운 방을 선택해서 잠을 자며 나중에는 나머지 방을 귀국할 때까지 다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난달 전주를 방문하며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계신다는 동네를 구경하러 지인들과 방문했다.

비가 내리는 산 아래 낡은 동네 집 한 채가 어느 배고픈 화가의 그림처럼 애잔하게 유년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나중에 전주에 세컨하우스를 얻어 글이며 그림이며 혼자만의 작업을 하며 사색하는 놀이터를 만들면 어떨까하고 집 설계도를 그리며 잠시 꿈을 꾸었다.

산 아래에서 바라본 언덕 위 낡은 슬라브 지붕과 잿빛 담벼락을 수선하고 작은 대문은 부모님이 칠하셨던 페인트가 두껍게 벗겨진 항상 열려있는 짝이 어긋난 파란 대문을 달면 어떨까

버려진 폐목으로 작은 개집도 직접 만들고 족보도 없는 똥개 한마리를 키우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마당에는 버려진 내화 벽돌로 울타리를 만들고 도시에서 보기 힘든 채송화와 코스모스를 심은 작은 화단이 있는 집이 더 예뻐질 것 같다.

비록 동네는 낡고 때가 묻었지만 조용한 뒷 산의 병풍이 부모님과 살았던 내 유년 시절 산 101번지와 닮아 있다.

그 풍경에 마취가 되어 나는 마치 향수병 걸린 이민자처럼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산 허리의 작은 집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가난한 산 101번지와 달리 요즘 출근하는 남산 사무실 높은 곳에는 부자들이 서로 뽐내는 커다란 주택들이 몰려 있다.

생각해 보면 큰 집은 넓어서 할 일도 많고 관리하기도 벅차다. 가까운 친척 중 한 분은 자식과 단둘이 서울 서래마을에 일하는 아주머니와 95평 커다란 빌라에 살고 계신다.

관리비며 이것 저것 한 달 생활비가 10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하는데,그쪽 사람들은 금 수돗물이 나오고 금쌀을 먹고 금똥을 싼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돈이 남아 돌아나도 그렇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 집을 생각하며 거인이 사는 집도 아니고 식구들도 없는 빈집은 내가 살았던 쿤산의 방 8개 복층 아파트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노후에 가끔 혼자 와서 쉴 수 있는 산허리 아래 작은 집 하나를 따로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에는 바리톤 송바가 만들어 준 테이블을 놓고 서재에는 내가 좋아하는 말러와 루빈스타인을 모실 수 있는 구형 오디오를 놓을 것이다.

좋아했던 시절의 책들이 놓인 책장과 그리고 한쪽 벽은 지나간 시절 내가 사랑했고 존경했던 지구를 떠난 유목민들의 사진을 붙일 것이다.

아침마다 그 시절  원두를 갈았던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아 내려 마시며 저녁에는 재래식 시장에 가서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재료를 사고 싶다.

해가 지면 양초를 켜고 드뷔시의 음악을 곁들이며 우아한 척 와인도 마셔야지. 그 때 가면 아마 내 삶도 황혼으로 다가가고 있겠지...커다란 집보다 놀이터 같은 행복한 작은 풍경을 매일 설계하고 있다. 

결국 소망이던 큰 집보다 청소년기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산 101번지를 나는 아직도 탈출을 못하고 있다. 아니 여전히 그 곳에서 살고 있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주홍수 감독은 30년 가까이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며 올 해 출판이 예정된 산문집을 준비 중이다.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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