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천재 감독 드니 빌뇌브의 스페이스 오페라

아이즈 ize 권구현(칼럼니스트) 2021. 10. 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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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권구현(칼럼니스트)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 책이 내 침대 옆 책장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놓여 있던 이유가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

SF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프랭크 하버트의 소설 '듄'(1965)은 판매부수 2000만 부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권위적인 SF 문학상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 수상했던 '듄'은 영화 '스타워즈' '에이리언' '매트릭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게임 '스타 크래프트' 등 문화 전반에 SF적 영감을 선사한 위대한 작품으로 추앙받는다.

허나 정작 원작의 영화화는 부침을 겪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74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시작했던 영화 '듄'은 16시간 분량을 주장하는 감독과 제작자의 갈등에 결국 전복됐다. 기획 단계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나왔는데, 풍겨오는 명작의 잔향에 팬들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삼켰다. 그렇게 출발한 '듄'의 영화화 배턴은 리들리 스콧을 지나 데이비드 린치에게 당도했다. 하지만 그 역시 러닝 타임에 발목을 잡혔고, 결국 137분이라는 제작자의 의중이 다분하게 담긴 난도질 버전으로 개봉했다. 팬들은 물론 데이비드 린치마저도 당시의 작품을 악몽으로 회자한다. 그렇게 '듄'은 결국 모든 감독이 연출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없는 '독이 든 성배'가 됐다.

사실 명작을 원작으로 두는 작품들은 언제나 비슷한 시련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대중들에게 인정받았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그러했으며, 마블과 DC의 방대한 세계관 역시 만화책에서 스크린으로 삶의 터전을 이주하는 데 성공,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흔들고 있다. 텍스트를 스크린으로 펼쳐내는 기술력은 이미 차고도 넘치는 수준. 결국 일일 상영횟수를 결정 짓는 러닝 타임이 문제인데, 이마저도 상업적 흥행만 보장된다면 지금의 영화시장에선 큰 문제가 되진 않을 일이다. 일련의 사정 속에 마침내 '듄'이라는 잠재적 흥행 폭탄이 드니 빌뇌브의 손에 쥐어졌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위대한 자는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고 부름에 응답한다" - 영화 <듄>의 레토 공작

결과적으로 말하면 수작이 탄생했다. '듄'의 영화화가 오래도록 표류한 것은 드니 빌뇌브를 만나기 위해서였나 보다. 감독의 말을 빌어 심리스릴러이자 어드벤처, 전쟁영화, 성장영화, 그리고 러브 스토리까지 담았다. 말 그대로 대서사시의 시발점이다. 이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통해 명작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법을 입증한 감독이다. 위대한 원작의 부름에 응답한 드니 빌뇌브는 그간 자신이 쌓아왔던 필모 속 역량을 모두 쏟아부었다. 어머니와 자식의 가치관 대립('그을린 사랑'), 자아의 분열과 대립('에너미'), 정의와 공권력의 딜레마('시카리오'), 외계와의 접촉과 소통('컨택트') 등 드니 빌뇌브의 메시지는 '듄'이라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함께 웅장한 시너지를 발현한다.

감독은 원작이 품고 있는 다양한 설정들을 설명이 아닌 비주얼과 대사로 술술 풀어낸다. 폴의 탄생과 베네 게세리트(신비의 여성집단)의 관계, 아라키스 행성을 둘러싼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의 대립, 스파이스(우주 여행에 필요한 환각제)와 모래 벌레, 프레맨(아라키스 행성 원주민) 등 분명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한 작품이건만, 영상 미학만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덕분에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듄'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특히 '폴'(티모시 샬라메)가 가지고 있는 양가적 감정 - 메시아와 인간, 혁명과 폭력, 전쟁과 생존 등 – 이 오롯하게 그려지는 것이 정말로 반갑다. 이번 작품의 폴은 매우 바쁘다. 탄생의 비밀도 파헤쳐야 하고, 초능력과 무술도 익혀야 하며, 꿈에 등장하는 예시까지 해석해야 한다. 외적으로는 사막 행성으로 이사도 해야 하고, 원주민의 생활 방식도 깨우쳐야 하며, 정치적 대립 속에 전쟁도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변화와 감정이 쌓여 가는 과정을 감독은 특유의 느릿한 연출로 시나브로 표현한다. 하여 과거의 명장들이 러닝 타임에 발목을 잡힌 것이 십분 이해가 가는 상황. 다행히도 이번 작품은 1, 2부로 나뉘어 드니 빌뇌브의 연출 시간에 여유를 뒀다. 

SF 영화의 주축 중 하나인 비주얼에도 강점을 보이는 감독이다. 10191년의 미래지향적 장치와 고대 지구의 문화를 절묘하게 비주얼로 합산했다. 가장 눈에 띄는 비주얼 설정은 '홀츠만 방어막'. '스타워즈'에 광선검 액션이 있었다면 '듄'엔 홀츠만 방어막 액션이 있다. 방어력이 대단하지만 속도가 느린 공격엔 뚫리고 만다는 설정 아래 독특한 액션신을 펼쳐낸다. 나아가 잠자리와 비슷해 보이는 비행체 '오니솝터'와 몸에 수분을 공급하는 '사막복' 등 다양한 기계와 도구들을 배치했고, 아날로그로 표현한 사막의 웅장함과 CG인 모래 벌레의 융합 역시 눈의 호사를 이룬다.

폴이 펼쳐 놓는 대서사시인 만큼 이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중요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두 번째 후보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티모시 샬라메는 폴의 변화를 감정적으로, 그리고 외모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한다. 귀찮다는 이유로 검술 수업을 거부하고, 조상의 무덤가에서 아버지에게 가문의 역사를 듣는 앳된 소년에서 점차 발현되는 자신의 능력에 고민하는 사춘기 청년의 섬세한 감정, 나아가 가문의 몰락 이후 어머니를 지키고자 하는 성인 남성의 매력까지 한 영웅의 성장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덕분에 관객은 폴의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 성장하며, 그의 꿈을 응원하게 된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티모시 샬라메를 둘러싼 배우들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아버지 '레토 공작'(오스카 아이삭),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 참모 '거니 할렉'(조슈 브롤린), 보디가드이자 전사 '던컨 아이다호'(제이슨 모모아), 프레멘의 리더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예시의 주인공인 '챠니'(젠데이아)까지 화려한 이름값을 충분히 다한다. 비록 분량으로는 사뭇 아쉬운 인물들도 있겠지만 2부에서의 활약이 예고돼 있다. 

어쩌면 1부의 끝이 다소 허망할 수 있다.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끓이는데, 수증기를 뿜기 전에 열원이 다한 느낌이다. 위대한 여정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의 1부 '반지 원정대'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만큼 15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듄'이라는 작품에 몰입됐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부의 개봉일이 언제일지, 극장에서 나옴과 동시에 기다림이 걱정되는 작품이 탄생했다. 

마침내 드니 빌뇌브가 독이 든 성배 '듄'의 저주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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