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백신과 치료제 개발 바이러스 기초 연구역량 없이 달성 어려워..미국과 30년차"

조승한 기자 2021. 10. 1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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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한국화학연구원장
이미혜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이 6일 대전 유성구 화학연에서 코로나19 백신 연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한국에서 바이러스 기초 연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국내 협력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 연구기관들도 기초연구에서 해외와 30~40년의 격차가 납니다.”

이달 6일 대전 유성구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만난 이미혜 화학연 원장은 "한국과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협력 추진 과정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만큼은 기초연구 역량 없이는 절대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새삼 다시 깨달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원장은 올 추석 당일인 지난달 21일 미국 뉴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미 백신 협력 협약 체결식’에 참여했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화학연과 미국 로체스터대 백신생물면역학센터,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와 코로나19 백신 공동 연구개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력에 따라 화학연은 로체스터대와 몸속에서의 백신 작용 원리와 이상 반응을,  스크립스연구소와는 세포 감염 경로와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동 연구를 수행한다. 

화학연은 1990년부터 의약바이오본부를 설립하고 약물 합성 연구를 진행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CEVI)을 만들어 감염병 백신과 치료제 연구도 진행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나자 코로나바이러스의 합성항원 백신 후보물질도 발굴해 HK이노엔에 기술을 이전하기도 했다. 이 물질은 올해 7월 임상 1상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화학연이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을 개발할 정도의 연구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 원장은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국내 바이러스 기초 연구 역량이 부족해 백신 후보군을 추가로 발굴하는 데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백신 분자를 설계하고 합성해 약효를 평가하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백신 후보물질의 효능과 독성을 수치로 평가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물질이 백신으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면역 효과가 생기는지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는 축적된 바이러스 기초연구 역량과 결과가 필요하다. 이 원장은 "로체스터대의 경우 백신 후보물질이 몸에 들어갔을 때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그 요인이 무엇인지 분자 수준에서 분석이 가능하다"면서 "한국이 이 분야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번에 협약에 참여한 미국의 연구기관들은 화학연이 발굴한 백신 후보물질이 독성이 낮고 효능이 높아 기초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새로운 백신 개발의 실마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또 "팀 오스만 로체스터대 백신생물면역학센터장을 비롯한 협약에 참여한 미국 과학자들이 대통령이 백신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는 데 대해 한국 정부 의지를 강하게 느꼈다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신 개발에는 통상 5~10년이 걸린다. CEVI 운영에서 경험을 얻은 이 원장도 "백신 연구는 1~2년으로는 의미가 없고 5년 이상 장기적이고 큰 규모로 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에서도 관련한 국제협력 사업을 계획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출범한 CEVI는 메르스 연구를 추진해오다 지난해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모든 연구방향을 코로나19로 돌렸다. 1년만에 진단키트와 백신, 치료제까지 모두 개발해 기업들에 기술이전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올해 감염병 대응 연구개발(R&D)에는 4376억원을, 내년에는 그보다 11.5% 늘어난  4881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활용할 인력과 설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본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이 원장은 “화학연만 해도 백신 연구팀 핵심 인력이 10명에 불과하고 지난 2년간 너무 많은 일을 하면서 지쳐있다”며 “예산이 늘어나도 인력을 비례해서 늘릴 수 없는 출연연구기관의 현실 때문에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에 설치한 232㎡ 규모의 생물안전 3등급 시설(BL3)도 이미 포화 상태다. BL3는 위험한 감염병 등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설비다. 화학연에서는 감염병 연구에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지만 BL3 시설은 초등학교 교실 한 개 규모로 작다 보니 다양한 전임상 동물 실험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연구원 내부에서도 신경이 예민해질 정도로 경쟁이 심한 데다 대학이나 기업에서 실험 지원 요청도 물밀듯이 쏟아졌다.

이 원장은 “출연연이 매년 많은 시설을 요청할 수 없어서 내년도 예산에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급했던 소재부품장비 상생협력센터를 우선 신청했다”며 “내년 BL3를 신청할 계획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우선은 인프라를 가진 기관들과 협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당분간 역량이 부족한 기초연구 부분은 눈을 돌려 해외의 유능한 파트너와 손잡고 연구를 이여가야 한다"며 "국내 인력도 전반적으로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 학생들을 많이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2019년 11월 취임한 이후로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슈에 매달려야 했다. 부임 당시에는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에 대응해야 했고,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대응에 바빴다. 올해는 탄소중립에서도 역할을 해야 하는 기관이 됐다. 이 원장은 “탄소중립을 보면 이산화탄소 저감과 산업전환이 연관돼 있는데 이중 석유화학 산업이 우리와 매우 밀접하다”며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부터 연료까지 바꾸는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2050 탄소중립 계획을 보면 석탄은 이용량이 0이 되지만 석유는 원료로는 활용되는 만큼 없어지지는 않는다”며 “결국 석유를 활용하는 만큼 공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이거나 원료 활용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학연은 탄소중립 관련 기술을 연구 기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석유화학 공정 효율화, 중기적으로는 석유 원료를 쓰는 플라스틱 재활용, 장기적으로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중이다. 이 원장은 “중기적으로는 플라스틱을 다시 분해해서 단량체로 만들어 에너지를 아끼거나, 바이오매스를 활용하는 방향을 연구하려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너무 비싸 상용화가 어려웠던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물질 개발이 탄소세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생길 것으로 보고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탄소중립위원회에서 과학기술 분과 위원으로도 참여중이다. 탄중위는 정부가 목표로 삼은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는 시나리오를 올해 중 결정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리고 토의를 진행중이다. 내부에서는 환경 쪽 관계자와 산업 분야 관계자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다만 탄소중립 시나리오 대부분이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CCUS)과 같은 과학기술에 의존함에도 과학기술의 역할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원장은 “국제사회에 나가려고 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목표를 빠르게 정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시나리오에 과학 분야가 너무 넓은데도 논의에 드는 기간이 너무 짧고 탄중위 내 과학기술 분과에 7명밖에 없는 건 아쉽다”고 말했다.

내년 11월까지 약 1년 남짓한 임기를 남긴 이 원장은 “원내 연구자들에게 출연연의 가치와 연구자 개인의 욕망이 일치되는 연구를 하도록 노력할 것을 강조해 가치 있는 연구기관이 되도록 하는 데 힘을 싣고 싶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출연금 연구사업을 사회 요구에 대한 대응을 단기와 중기, 장기로 나눠 과제로 구성하고 연구원들이 토의를 통해 가치를 정하고 6년 계획을 세우는 형태로 꾸렸다”며 “평가할 때도 논문과 특허로 하지 않고 기술의 효과와 의미, 가치와 기여도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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