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 지명, 왜 늦어지는 걸까요 [한반도 줌인]
[한반도 줌인] “멀게만 느껴지는 외교 현장 이야기를 친절하고 깊이있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1월 공식 출범한 뒤 열 달이 지났지만, 차기 주한 미국 대사 인선은 아직도 안갯 속이다. 중국과 일본 주재 미국 대사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초창기부터 중량감 있는 인사의 내정설이 전해졌고, 지난 8월에는 백악관이 정식으로 인선을 발표했다. 주중국 대사는 니콜라스 번스 전 국무부 정무차관이, 주일본 대사는 람 이매뉴얼 전 시카고 시장이 지명됐다.
반면 주한 미 대사는 지명 발표는 고사하고 내정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동맹 복원’을 통해 인도·태평양 역내 도전에 대처하겠다던 바이든 정부가 정작 한국 대사 임명을 뒷전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미 당국을 잇는 핵심 메신저인 주한 미 대사의 부재가 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종전선언, 제재완화 등 사안마다 충돌한 여야 의원들도 주한 대사 임명을 촉구하는 데 만큼은 한 목소리를 낸 까닭이다.
■10개월된 미 정부, 3분의 1 정도만 새 대사 지명
바이든 정부의 한국 대사 인선은 정말 늦어지고 있을까. 18일 미국외교관협회(AFSA) 홈페이지에서 해외 주재 미국 대사 임명 현황을 추적하는 코너를 살펴봤다.
백악관과 국무부, 미 상원 등의 발표를 토대로 AFSA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일 기준 대사가 지명(또는 임명)된 경우는 전체 189개중 64개(33.9%)다. 상원 인준 표결을 거쳐야 하지만, 전 세계 미국 공관의 약 3분의 1 정도는 새로운 대사가 정해진 셈이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 직후 대사들이 일괄적으로 사표를 내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대사 임기가 남은 경우 등에는 간혹 유임되기도 한다. 따라서 189개 대사직 가운데 현직 대사가 없어 ‘공석(vacant)’으로 표시된 100개(52.9%)가 교체 대상이라고 볼 경우, 바이든 정부의 대사 지명 비율은 64/100, 즉 64%로 올라간다. 한국 대사는 지명되지 못한 36개 자리, 하위 30%에 속하는 것이다.
■중국·쿼드 회원국 대사 이미 지명…주한 대사 하마평은 ‘잠잠’
물론 통계만으로 주한 대사만 유독 인선 작업이 미뤄지고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대사 지명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미국이 대사를 지명하는 순서가 자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반영한다고 결론짓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주한 미 대사 하마평마저 많이 나오지 않는 상황은 중국, 일본은 물론 이미 아태지역 주요 나라들에서 대사 내정이 속속 이뤄진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주력하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 회원국인 인도 주재 대사로는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의 최측근인 에릭 가세티 로스앤젤레스(LA) 시장이 낙점됐다. 역시 쿼드의 일원이자 바이든 정부가 새로 결성한 안보동맹 ‘오커스(AUKUS)’의 주축인 호주대사에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 전 주일대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베트남 대사로는 지난 4월 마크 내퍼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가 지명됐다. 싱가포르 대사에는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조너선 카플란, 스리랑카 대사에는 한국계 직업 외교관인 줄리 지윤 정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 대행이 각각 지명됐다.
■주한 대사대리 체제 언제까지
‘4성 군인’ 출신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 대사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지난 1월20일 한국을 떠났다. 그 후로 9개월 넘도록 주한 미 대사관은 대사대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지난 7월 본국으로 돌아간 로버트 랩슨 부대사의 후임으로 온 크리스 델 코르소 부대사가 대사대리를 맡고 있다.
주한 대사 ‘공백’ 사태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해방 후 1949년 초대 대사를 지낸 존 무초 전 대사부터 해리스 전 대사까지 모두 24명의 대사가 한국을 거쳐가는 동안, 행정부 교체나 대사 이임·부임 등의 이유로 수개월씩 공백이 발생했다. 마크 내퍼 대사대리는 2017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장장 1년 6개월간 마크 리퍼트 전 대사를 대신해 대사 역할을 했다.
그런데 현재 주한 대사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이 거의 없는 현실은 외교가 안팎에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국감에서 언론에 보도된 후보들과 관련 “간간히 리스트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은 의미 없는 루머라고 한다. 그 얘기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 대사 인선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시급한 과제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만약 미국이 여전히 대사 후보군을 물색하는 단계라면, 향후 대사 지명→주재국 동의→의회 인준 요청→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 및 전체회의 표결 절차를 고려하면 실제 주한 대사 부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정통 외교관이 아닌 정무직 인사를 임명할 경우, 의회 내 절차가 더디게 진행될 수도 있다.
북핵 위협, 주한미군 등 동맹 이슈, 한·일 갈등과 같은 현안이 산적한 한국은 미국의 지역 전략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나라다. 한·미관계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맞이한 두 번째 정상이 한국 대통령”이라며 “미국의 동맹 중시 기조와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맞는 비중있는 인사가 오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군 대령, ‘딸뻘’ 소위 강간미수···“유혹당했다” 2차 가해
- 윤 대통령 공천 개입 의혹, 처벌 가능한가?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윤 “김영선 해줘라”…다른 통화선 명태균 “지 마누라가 ‘오빠, 대통령 자격 있어?’ 그러는
- [단독]“가장 경쟁력 있었다”는 김영선···공관위 관계자 “이런 사람들 의원 되나 생각”
- [단독] ‘응급실 뺑뺑이’ 당한 유족, 정부엔 ‘전화 뺑뺑이’ 당했다
- 윤 대통령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 공천개입 정황 육성…노무현 땐 탄핵소추
- [단독] 윤 대통령 “공관위서 들고 와” 멘트에 윤상현 “나는 들고 간 적 없다” 부인
- [단독]새마을지도자 자녀 100명 ‘소개팅’에 수천만원 예산 편성한 구미시[지자체는 중매 중]
- “선수들 생각, 다르지 않았다”···안세영 손 100% 들어준 문체부, 협회엔 김택규 회장 해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