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1년 디스토피아.. 액션보다 '철학'을 담았다

김인구 기자 2021. 10. 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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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스 행성의 사막 속에 사는 거대한 모래 벌레. ‘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다.

■ 20일 개봉하는 영화 ‘듄’

20세기 최고의 과학소설 영화화

빌뇌브 감독·제작비만 1952억

거대하고 다양한 우주선 압도적

출렁이는 모래언덕 미장센 웅장

원작소설 ‘세계관’ 설명에 주력

감독 “2부 메인을 위한 전채요리”

미국 할리우드엔 ‘듄(Dune)의 저주’라는 말이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소설(SF)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일찍이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리들리 스콧 등 거장 감독들이 손을 내밀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이후 1984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일단 스크린에 올리는 건 해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으나 무엇보다 프랭크 허버트가 1965년에 시작해 20년간 6권으로 펴낸 방대한 원작소설을 2시간 남짓의 영화로 축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마 ‘컨택트’ ‘시카리오’의 천재감독 드니 빌뇌브도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유수의 선배 감독들을 뛰어넘어야 하고, 1억6500만 달러(약 1952억 원)의 엄청난 제작비도 감당해야 하니까.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영화를 2편으로 나눠 찍기로 하고 메가폰을 잡았다.

엄밀히 말하면 ‘듄’은 소설 1권의 1편이자 전체 이야기의 전반부다. ‘모 아니면 도’의 도박이다. 잘 되면 ‘반지의 제왕’이나 ‘어벤져스’ 시리즈를 능가하는 SF 대표작이 될 수 있고, 안 되면 ‘미완’에 그치는 것이다.

2편 혹은 속편의 여지를 둔 상황에서 ‘듄’은 원작의 복잡한 세계관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지금으로부터 아주아주 먼 미래인 1만191년의 우주 세계. 황제가 주도하는 제국 형태의 사회 체제에서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둘러싼 귀족 가문들의 쟁탈전이 치열하다. 아라키스 사막에서 나오는 ‘스파이스’ 때문이다. 스파이스는 매우 귀하고 값비싼 자원이다. 우주비행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며, 동시에 환각제로서 인간의 정신능력을 확장하는 물질이다. 현대사회로 치면 석유라고 할까. 이 채굴권을 두고 황제 휘하의 권력 집단인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충돌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테 샬라메)은 수시로 아라키스 원주민인 프레멘 족 여성 챠니(젠데이아)에 관한 예지몽을 꾸며 아라키스로 향한다.

여기까지 설명하는 데에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듄’ 모래사막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모래 벌레가 나오기까지도 뜸을 들이고,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전쟁하는 클라이맥스 대목도 100분이 지나서야 본격화한다. 폴이 비밀스러운 모계 혈통에 의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아라키스로 건너가 꿈에 본 챠니를 만나는 것도 영화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이다.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러닝타임 155분을 다 소진하고 만다.

다시 한 번 원작의 압박이 느껴진다. 원작 소설은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받았다.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그동안 20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SF 걸작 ‘스타워즈’, HBO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등에 영향을 미쳤다. 영상뿐만 아니라 동명의 게임으로 제작돼 ‘스타크래프트’ 탄생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서브 컬처를 낳았다.

빌뇌브 감독은 우선 주인공 폴을 통해 이런 압박과 부담을 분산했다. 세계관을 줄줄이 설명하고 있으나 사실은 폴의 성장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가 내면에 잠재된 초인적 능력을 각성하고 제국에 지배받는 아라키스 프레멘 족의 메시아(구세주)로서 투쟁에 나선다는 우주적 서사가 펼쳐진다.

새롭게 창조한 우주적 비주얼과 사막의 황량함도 SF의 디스토피아적 감성을 깊이 자극한다. 접시형, 막대형, 잠자리형 등 다양하고 거대한 형태의 우주선과 비행선이 압도적이다. 드라큘라를 연상하게 하는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이 공중부양하는 장면, 황제의 측근이자 폴의 대모가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비행선에서 내려 걸어들어오는 장면, 파도처럼 출렁이는 모래언덕의 미장센도 웅장하다. 한스 짐머가 맡은 종교적, 몽환적, 판타지적 음악도 미래 세계의 이질감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액션은 다소 빈약한 편이다. ‘스타워즈’ 같은 비행선 추격전이나 광선검 맞대결은 없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먼 미래인데 칼을 이용한 지상에서의 백병전이 더 많다. 기존의 화끈한 SF 액션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SF지만 그 안에는 인류의 삶과 철학, 종교와 정치 등에 관한 메시지가 더 많이 담겨 있다. 이 대목에서 엉덩이가 아프기 시작한다.

빌뇌브 감독의 인터뷰가 좀 더 힌트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듄’은 대형 스크린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서 한 편의 영화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듄’은 내가 찍은 영화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어려운 도전이었고, 아직 남아 있는 2부 메인 요리를 위한 전채 요리”라고 말했다. 2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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