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운명에서 제외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한겨레 2021. 10. 18. 08:1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시릴 데이비가 쓴 인도 성자 '선다 싱'의 전기를 읽는다.

"나는 기도할 때 말하지 않는다. 방금 읽은 성경구절을 생각하며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나와 예수님을 위해서 한 일을 반성하고 할 일을 계획한다. 이게 기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서 말하는 건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태양이 먹을 수 없는 바닷물을 하늘로 가져다가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돌려주신다.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기도가 이와 같다."

글 이현주 목사/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사진 픽사베이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는 후배목사가 얼마 전에 본인 말로 “돈과 여자들이 동원된 치명적 스캔들”을 저질렀단다. 누가 그 비밀을 알고 은행 계좌에 얼마를 입금시키지 않으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데, 말하자면 이럴 경우 어찌 할까를 묻는 인생-상담이다. “고민할 것 없네. 하느님이 자네에게 좋은 기회를 허락하셨군. 스캔들에 얽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낱낱이 밝히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시게. 사람들이 알아서 자네를 죽여줄 걸세. 살 길을 찾지 말고 죽는 길로 가라고!” 단칼에 무 자르듯 급히 말하다가 가쁜 숨 몰아쉬며 꿈에서 깨어난다. “사실을 밝힐 때 돈은 정확하게 액수까지 밝히되 여자들 신분은 밝히지 말게나. 인권에 관계된 문제라서 건드리면 복잡해지거든. 긁어 부스럼 만들 건 없지.” 이 말을 후배목사에게 해주지는 못했다. 꿈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생 참 간단한 거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제 잘못을 스스로 밝히고, 그리고 뉘우쳐 돌아서는 것. 돌아서서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구별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고 구차스럽게 살길을 찾는 두 번째 잘못을 저지르다보니 산뜻할 인생이 너절해지는 거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으면 산다.” 예수의 이 말씀은 천하에 명언이다! 다만, 죽는 길로 가되 제 숨구멍을 제 손으로 틀어막는, 유다처럼, 그건 아니다. 그러면 하늘이 저를 한 차원 높은 인생으로, 베드로처럼, 되살려낼 기회가 막혀버린다.

#앞뒤로 연결되는 말들이 모두 지워지고 한마디만 남는다. “본인 울음으로 출발하여 주변사람들 울음으로 마감하는 인생여정!” 누가 속삭인다, “이걸 ‘아니’인 ‘예’로 볼 수 있겠느냐?” 답한다, “흠, 그늘로 빛을 보라는 말이군!”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다. 그렇다, 그늘이 짙을수록 그만큼 강한 빛이 있는 거다. 그늘을 보되 그늘만 보지 말고 그늘을 존재케 한 빛을 보라는 말이다. 순간인생을 즐기되 조물주를 기억하라는 솔로몬의 충고가 이런 뜻인가? 울음으로 출발하여 울음으로 마감하는 인생에서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영원한 붓다의 미소를 보라? 맞아, 그늘은 때와 곳이 있지만 빛은 그런 것 없지!

#무슨 스토리가 있는 건 분명한데 내용은 안개속이다. 배달부는 보이지 않고 그가 전해준 물건만 눈앞에 있는 셈이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자꾸 준다. 누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계속 받는다. 그런데 그 ‘누구’가 둘이면서 하나다. 그러니까 제가 저한테 무엇을 주고 제가 저한테서 무엇을 받는 거다. 비유하자면, 누가 거울에 비친 자기하고 무엇을 주고받는 원맨쇼를 하는데 거울이 없다. 주고받는 것들은 무척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주고받는 ‘무엇’마다 장(長)과 단(短), 고(高)와 저(低), 상(上)과 하(下)로 온갖 콘트라스트가 빠짐없이 들어있다. 뭐야? 저 ‘누구’가 하느님인가? 이런 생각과 함께 어디선가 너무나도 영롱한 “딩동!” 신호음이 들리고 꿈에서 나온다. 흘끗 보았으면 됐다는 얘긴가? 온갖 끔찍하고 흉측한 모양으로 나타난 크리슈나 앞에서 겁에 질린 아르주나가 당황하는 바가바드기타의 장면이 생각난다. “기억해라, 하느님은 네 친구 안에 계시는 것과 똑같이 네 원수 안에도 계신다. 네가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너를 미워하는 사람들 안에 같이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볼 때, 어디에나 편만한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볼 때, 그때 그분의 없는 곳 없는 임재를 깨치게 될 것이다.”(요가난다). 붓다는 어디 있는가? 똥 막대기에! 옳거니, 이제부터 누가 어떤 얼굴로 나타나 무슨 엉뚱한 짓을 하든지 그가 ‘사람’이라는 진실을 기억하자. 같은 한 사람이 온갖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로 나타나,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무엇을 주고받으며, 지고지선의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모노-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거다.

#쌍둥이가 개복수술을 받는다. 형제의 같은 부위를 같은 의사가 동시에 수술한다. (어떻게 두 환자를 한 의사가 동시에 수술하는지 알 수 없지만 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다.) 수술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열었던 배를 덮어야 한다. 이 작업은 두 인턴이 각자 한다. 두툼한 비닐 같은 것으로 벌건 내장을 덮는다. 저쪽은 비닐이 조금 찢어지고 전체적으로 구겨진 상태인데 이쪽은 금방 기계에서 뽑은 것처럼 말짱하다. 아무래도 저쪽에 문제가 생기지 싶었는데 결과는 오히려 반대다. 구겨진 비닐로 덮은 내장은 깨끗이 아물고 말짱한 비닐로 덮은 내장은 고름이 생겨 상태가 안 좋다. 담당의사가 원인을 밝힌다. 문제는 비닐의 상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인턴의 마음 상태라는 결론이다. 아무도 이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쪽 인턴이 무슨 징계를 받거나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전화 없는 방에서 전화벨 소리에 꿈을 깬다. 엉덩이가 사납게 가렵다. 저녁에 소고기 장조림이 맛있어 몇 조각 먹었더니 영락없는 몸이 봐주질 않는다. 죄송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몸에 사과하고 긁기를 멈춘다. 새벽 1시. …그 인턴의 마음이 어쨌기에 문제가 생겼던가? 모르겠다. 어쨌든 재료보다 그것을 쓰는 사람 마음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부드럽고 선선한 분위기였던 건 맞다. 시대가 급박하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선물을 통하여, 물질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 마음이 중요하다는 진실을 인류가 제 속도로 깨쳐가는 중이다. 그렇다, 문제는 코로나보다 코로나를 접하는 사람들에 있다.

#시방 남의 침대에서 뭘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바라본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앳된 여자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를 등에 업은 채 이제 막 정사(情事)를 마치고 일어나 앉는다. 얼굴 표정은 읽히지 않는다. 남자도 보이지 않는다. 침대 가까이 다가가는데 여자가 작은 소리로 말한다. “무섭네요.” 비어있는 침대 하나 잠시 썼다고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느냐는 뜻이다. “그럴게다.”라고 대답하다가 급히 꿈에서 깨어난다. 거의 동시에 누가 묻는다. “뭐가 그럴 거라는 말이냐? 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큰소리로 욕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만 속으로 거북했던 건 사실 아니냐? 아직 멀었다. 뭐가 네 것이고 누가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거냐?” …할 말이 없다. 오래 전 후배에게 써준 말이 생각난다. “내가 내 몸으로 내 일 하는 거다. 구시렁거리지 마라.” 다른 누구에게 써줄 말이 아니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세상을 노닐며 세상을 살리는 거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저 바람처럼! “예수께서 그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지만 사람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소.’ 하셨다.”(루가 9, 58). 참 자유인의 말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연관된 이야기들’(?)이라는 글을 옮겨 베끼는데 단어가 어수선하고 앞뒤가 오락가락하여 정신이 없다. 금방 적은 글이 지워지기도 하고 같은 구절이 반복되기도 하고… 이거 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꿈에 글을 쓴다는 건 하나마나한 일인데, 이런 생각과 더불어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들리는 한마디가 급하다. “아직도 만화를 읽느냐?” 대답도 전광석화다. “만화가 뭐 어때서?” 잠에서 깨어나 오줌 누는 동안 생각이 이어진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천사들 나팔소리에 묻혀 구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이 현실과 꿈의 차이를 구분 못하는 유치한 아이냐?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냐?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있는 거다. 하지만 구분 못한다 해서 문제인 것도 실은 아니다. 아이가 유치하게 생각하고 아는 게 무슨 문제인가?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어른의 존재다. 아니,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어른은 그런 짓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그리스도의 재림에 연관된 이야기들’에 도무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하기는 뭐 괜한 문제들을 만들어 그것들로 고민하고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는 게 인생일진대, 만화여, 그냥 만수무강하시라!

시릴 데이비가 쓴 인도 성자 ‘선다 싱’의 전기를 읽는다. 그가 말한다. “나는 기도할 때 말하지 않는다. 방금 읽은 성경구절을 생각하며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나와 예수님을 위해서 한 일을 반성하고 할 일을 계획한다. 이게 기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서 말하는 건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태양이 먹을 수 없는 바닷물을 하늘로 가져다가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돌려주신다.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기도가 이와 같다.”

#아침 산책길에 발이 미끄러지니 몸이 나동그라진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하나. “발이 미끄러진 게 아니다. 몸이 미끄러진 거다. 발이 미끄러졌으면 발이 나동그라질 것 아니냐? 네 모든 동작을 네가 하는 게 아니다. 한님이 하시는 거다.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고? 아무 염려 말고 매사에 고마운 줄 알라는 말이다. 무엇이 더러운 것은 그것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거쳐야만 가서 닿을 수 있는 깨끗함을 네 짧은 눈이 보지 못해서다. ‘모든 게 잘 되리라.’ 노리치의 줄리안이 내다본 이 운명에서 제외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아멘!

글 이현주 목사/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