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특집 박우량 군수] "나는 신안을 가꾸는 정원사.. 문화예술 요람 만들겠다"

글 이재진 편집장 2021. 10. 1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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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 환상의 정원. 전국에서 기증받은 미끈한 팽나무가 명품 숲길을 이루고 있다.
전남 신안군 박우량 군수는 역사상 가장 스케일이 큰 정원사일지도 모른다. 1004개의 섬이 있대서 ‘천사섬’으로 불리는 신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섬과 가장 넓은 갯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박 군수는 사람들이 찾지 않던 이 외딴 섬들을 정원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1도 1꽃’ 사업이 그것. 섬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꽃을 섬마다 한 종류씩 심었다. 지붕과 가로등, 버스정류장도 꽃 색깔에 맞췄다. 섬 전체를 디자인하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다.
갯벌과 민어와 새우젓으로 알려졌던 신안을 지중해 정원처럼 만드는 이 유례없는 ‘섬 컬러 마케팅’은 국내뿐 아니라 CNN, FOX뉴스, 로이터 등 해외언론을 통해 해외에서도 화제를 부르고 있다. 천사대교와 압해대교, 임자대교 등 섬과 육지, 섬과 섬을 잇는 길이 열리면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도 접근이 쉽지 않아 외면당했던 신안의 섬들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섬마다 특징적인 색채를 입히는 ‘컬러 마케팅’, ‘1도 1뮤지엄’, 그리고 최근엔 신재생에너지 사업 이익을 주민들에게 나눠 주면서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신안군. 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는 박우량 신안군수를 만나 ‘신안 마케팅’ 비결을 들어봤다.
월간<山>과 인터뷰하는 박우량 신안군수. 신안군은 국내에서 최초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제’를 도입, 태양광과 풍력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군민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가장 스케일 큰 정원사
Q 섬 컬러 마케팅이 화제다. CNN 등 해외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A 고층건물과 쇼핑몰이 신안의 미래는 아니다. 도시 사람들이 신안까지 와서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고 싶겠나. 다시 찾고 싶은 신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안만이 갖고 있는 것들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그 부가가치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섬마다 특색 있는 꽃을 심는 ‘1도 1꽃’ 사업도 그래서 시작했다. 꽃으로 섬을 꾸미는 것은 보여 주기 행정이 아니다. ‘내가 사는 마을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는 자긍심을 지역민들이 먼저 느끼도록 해야 한다.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곳에 외부인들이 오겠는가.
세계는 지금 컬러 마케팅 붐이다. 색깔이 심리, 생리적인 면에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안군은 섬마다 고유한 자연풍광을 테마로 색깔을 입혔다. 선도에는 노란색 수선화, 반월도에는 보라색 라벤더, 병풍도에는 주홍색 맨드라미, 도초도에는 푸른색 수국…. 섬마다 특색 있는 꽃과 나무를 심고 지붕과 가로등, 버스정류장도 꽃 색깔에 맞췄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인증샷을 올리고 공유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알려졌다.
병풍도의 맨드라미. 신안 컬러 마케팅으로 섬에 주황색을 입혔다.
안좌·반월도 전경. 보랏빛으로 통일한 지붕이 이색적이다. 신안군 컬러 마케팅의 결과물이다.
박지도에 핀 보랏빛 아스타꽃.
신안군의 이런 노력들은 반짝 이벤트가 아니다. 10년 이상 꾸준히 관심을 갖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한국의 갯벌이 다른 곳과 함께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됐지만 신안의 갯벌이 차지하는 비율은 90%에 육박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미래세대를 위한 관광자원으로 가꿔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마케팅해야 한다.
작은 섬에 있는 마을 중에 하수정화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들이 있다. 신안군은 미생물 연구소를 5군데 운영 중이다. 하수 정화에 미생물을 이용하는 비율을 늘려나가고 있다. 농사에 쓰이는 폐비닐도 군郡 예산으로 주민들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신안군 안좌도 구대리의 태양광발전소 전경. 
태양광·바닷바람으로 연금 받는 군민들
Q ‘태양광으로 연금 받는 신안군’이 화제다. 추진하게 된 계기는.
A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세금을 걷어 주민에게 나눠 주는 것만 생각해 왔다. 신안군은 태양광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주민들의 소득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신안군이 국내 최초로 실현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가 그 고민에 대한 결과물이다.
생산된 전력 수익을 대기업이 독점적으로 가져가던 것을 지역주민에게 소득으로 분배하자는 것이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사기 아니냐’, ‘염전과 어장만 뺏긴다’는 등 반발이 거셌다. 주민들을 내가 직접 만나면서 설득했다. 지난 4월 안좌도와 자라도를 시작으로 7월엔 지도, 10월엔 사옥도 등 4개섬에서 모두 288MW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발전을 진행해 51억 원의 수익금을 올해 지역주민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됐다. 한 사람당 분기별로 30만~40만 원 정도의 혜택이 돌아가는 셈이다. 이 액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조기은퇴자클럽이란 곳에 직접 전화도 걸었다. ‘신안으로 오시라. 오시면 우리가 연금드리겠다’고.
압해도 분재공원의 저녁노을미술관.
드론으로 촬영한 도초도 환상의 정원 팽나무 숲길.
Q 풍력 발전규모가 세계 최대라고 들었다. 어느 정도 규모이며 진척 상황은.
A 전라남도 서남권 해역은 지상고도 약 80m에서 측정한 풍속이 초속 7~8m로 전국 최고의 해상풍력 발전 입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정부 목표인 2030년까지 48.7GW기가와트 해상풍력 발전의 16%를 차지하는 규모로 8.2G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해마다 이산화탄소를 1,000만 톤 줄이고, 소나무를 7,100만 그루 심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한국형 신형 원전 6기 규모의 발전량이기도 하다. 다만 그만큼 신안군 대표상품인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이 줄어들고, 어업에 일정 부분 타격은 불가피하다. 주민들 설득과 함께 보상 대책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자은도 수석미술관. 신안과 전국에서 기증받은 수석 260점이 전시돼 있다.
자은도 세계조개박물관. 국내 최대 규모로 1만1,000여 점의 조개·고둥 표본과 공예작품을 한데 모았다.
다리 증설, 환경 피해 최소화
Q 다리가 놓이고 대중교통이 편리해졌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다치지 않을지.
A 연도교를 만들게 되면 기존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교통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천사대교와 임자대교는 개통과 동시에 서남관광권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해상풍력발전기가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 해역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풍력발전기 공사를 할 때 소음 때문에 일시적으로 고기들이 도망가기도 하겠지만 공사 후 풍력발전기 하부가 어초 구실을 해서 오히려 어종과 어획량이 더 풍부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발과 보존의 갈등은 어디든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개발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신안군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함으로써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흑산도 신안철새박물관.
자은도에 있는 신안자연휴양림. 해변을 낀 휴양림으론 전국에서 유일하다. 수석공원이 조성돼 있다.
신안군 도초도가 고향인 박우량 군수는 “서울에서 멀고 먼 신안에서 문화예술이 꽃피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신안에 문화예술의 꽃 피우겠다
Q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시설 설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문화시설 현황은?
A 나는 신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역발전이 낙후된 신안군은 변변한 문화예술 혜택을 누릴 기회가 없었다. 이런 갈증으로 인해 군민들에게 문화예술을 체험할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싶었다.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 체험 기회를 군이 앞장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신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24곳에 박물관, 미술관 공원을 만들고 추진 중이다. 한국의 대표화가 고故김환기 화백의 고향인 안좌면에는 ‘김환기 미술관’을 만들었다. 세계적 바둑스타 이세돌의 고향 비금도에는 ‘이세돌 바둑기념관’을, 우암 박용규 화백의 작품으로는 압해도에 ‘저녁노을미술관’을 만들었다. 톱클래스의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신안에 둥지 틀게 하겠다. 서울에서 멀고 먼 신안에서 문화예술이 꽃피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
신안군 도초도가 고향인 박우량 군수는 1974년 스무 살 나이에 신안군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3년 뒤인 1977년 전국공무원 소양고사에서 2등을 했다. 그 결과 신안군청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중앙부처인 내무부로 전입됐고, 1988년에는 사무관 승진시험에서 1위를 차지하며 엘리트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행자부 요직을 거쳐 경기도 하남시 행정부시장과 서기관을 지내는 등 행정 전문가로서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하남시 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퇴임한 그는 2006년 치러진 10·25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신안군수에 당선됐다. 2010년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며 재선에 성공했다. 2018년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3선에 성공했다. 민주당 텃밭인 신안에서 세 번 내리 무소속으로 당선됐을 만큼 박 군수에 대한 군민들의 신뢰는 높다.
신안군의 상징처럼 된 ‘천사섬’(1004섬)이라는 이름도 박 군수가 직접 작명했다. 미국의 싸우전드 아일랜드thousand island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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