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뒷모습 보라, 승자 모습 보이던가? 진짜 1등은 말이야.."
모자와 안경,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 장소인 경기 성남 위례신도시 자택 앞 놀이터로 휘적휘적 걸어 오는 배우 오영수(77)는 그저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스크를 벗자마자 지나가던 주민들이 모여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휴대폰을 꺼내 얼굴을 확대해 보며 ‘맞아, 맞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짧은 백발에 약간 기른 수염, 홍조 띤 얼굴까지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그대로였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다 구경 났네!” 사진 촬영을 위해 미끄럼틀에 기대 앉은 노배우가 밝게 웃었다. “아 글쎄 며칠 전엔 근처 커피숍에 갔었는데, 커피를 마시려고 잠깐 마스크를 벗었더니 통유리 밖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절 알아보고 ‘깐부 할아버지다!’ 하곤 몰려 들어와 사인을 해 달라고 조르더라고요. 배우 인생 54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드라마보다 20년은 젊게 들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평소 목소리가 연기할 때와 많이 다르다는 그는 요즘 들어 갑자기 신경쓸 게 많아 체중이 2㎏이나 빠졌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일반인에겐 낯선 얼굴이었던 오영수는 꼭 4주 전 갑자기 ‘월드 스타’가 됐다. 지난달 17일 공개돼 세계 넷플릭스 역대 최대 흥행작에 올라선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은 것이다. 그가 ‘우린 깐부(딱지나 구슬을 서로 나누는 짝꿍이라는 뜻의 은어)잖아~’라는 명대사와 함께 퇴장하며 긴 여운을 남긴 6화에 대해 포브스지(誌)는 ‘올해 본 TV 에피소드 중 최고’라고 했고, 각국 유튜버들은 이 장면을 보고 울음을 펑펑 터뜨리는 리액션 영상을 앞다퉈 올렸다. ‘K-신파가 세계를 울렸다’는 말도 나왔다.
이쯤 해서 얘기하자면, 이제 스포일러(주요 내용 미리 공개)를 하지 않고 그의 인터뷰 기사를 쓰기는 불가능해졌다. 이 글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드라마 마지막 ‘게임의 설계자’라는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대목에서 세계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저 할아버지 누구냐” “신들린 연기” “배우가 아니라 진짜 오일남 같다” “드라마 성공의 1등 공신” “그 할아버지 때문에 계속 보게 됐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대중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기에 “금방 죽을 역할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드라마의 열쇠였다”는 반응이 국내에서도 나왔다. 이순재나 신구 같은 사람이 그 역할을 맡았다면 ‘저 할아버지한테는 뭔가 있다’고 의심했을 텐데 깜빡 속아넘어갔다는 얘기다. 그의 존재 자체가 ‘오징어 게임’의 거대한 스포일러인 탓인지, 넷플릭스 측에선 오영수에게 ‘처음 4주 동안은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사실 오영수는 반세기 넘게 200여편의 연극 무대 위에서 활동한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원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연극계에서 그보다 연장자 중 지금도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이순재(87)와 신구(85), 권성덕(80), 이호재(80), 전무송(80), 박정자(79)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오영수의 출연작 ‘3월의 눈’(2018)을 함께 했던 연출가 손진책은 그에 대해 “오랜 세월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한결 같다”며 “순수함이 설득력 있는 연기로 승화돼 나오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노부인의 방문’(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작, 손정우 연출) 무대에 오르던 2019년 11월이었죠. 황동혁 감독은 예전에 제게 영화 ‘남한산성’(2017)에 출연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정이 맞지 않아 못했었습니다. 훨씬 전에 김기덕 감독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에서 내가 노승으로 출연한 걸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 감독이 대학로로 와서 일부러 연극을 보면서 저와 만났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빚에 쫒기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상금 456억원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는 이야기다. 게임 종목은 한국의 아이들 놀이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등인데 탈락자는 모두 주최측에 의해 살해당한다.
―대본을 읽고 나서 든 느낌은 어땠나요.
“뭐 그렇게 꼭 황당하지만은 않았어요. 아이들 놀이를 통해 처절한 경쟁 사회를 상징한 일종의 우화라고 읽혔기 때문이죠. 새로운 형식에 메시지도 강하고, 언어도 살아 있었어요.”
―오일남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합니까?
“권력과 돈을 거머쥐었지만, 그러면서도 옛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인간적인 면모 역시 지닌 인물입니다. 자신이 정한 룰대로 승자에게 실제로 상금을 주고, 장기매매를 하며 게임의 ‘공정’을 위반한 부하를 처단하는 장면에서 보면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선과 악이 모두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언뜻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 보였고, 어쩌면 내 분신(分身) 같다는 기분도 들었어요.”
드라마 속 ‘001′ 번호가 새겨진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등장하는 오일남은 구부정한 자세로 팔을 휘저으며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게임을 즐기거나 도무지 상황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결정적인 장면에선 순식간에 부릅뜬 눈으로 상대방을 쏘아보며 얼어붙게 만들기도 한다.
―'저 배우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상황을 겪는 것 같다’는 찬사가 쏟아집니다. 비결이라도 있나요?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욕심을 부리며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내가 극중 설정대로 약간 치매기가 있는 뇌종양 환자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캐릭터 안으로 들어갔던 거죠. 제가 오일남과 실제로 비슷한 연령대여서 망정이지 아마 10년 전만 해도 그런 연기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이 배역에 필요한 내공이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을 겁니다. 내공이라는 것은 시간이 흘러 경륜이 쌓이기 전에는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10년 전이라 해도 67세였고 노승으로 많이 출연하던 때였는데, 내공이 무르익지 않았었다고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배우 장민호(1924~2012) 선생입니다. 제가 환갑 넘어서 나름대로 연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술자리에서 ‘오영수! 네 연기는 가짜야, 넌 아직 멀었어’라고 버럭 꾸짖으시더라고요. 그때 ‘아이쿠, 정말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설적인 배우 장민호의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원빈의 노역을 떠올리면 된다. 서울역 뒤 국립극단에는 그와 또 다른 명배우 백성희(1925~2016)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극장’이 있는데, 오영수는 “죽기 전 ‘장민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54년 동안 연극 무대 올라
그의 고향은 경기 파주다. 광복 전에는 임진강 너머인 경기 개풍군에서 태어나 살았는데, 거기서 고을 훈장을 하던 조부는 땅마지기도 꽤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38선이 그어지며 북한 땅이 돼 버리는 바람에 월남했다. 그나마 개풍 땅과 엎어지면 코 닿을 파주에 정착했다.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집안 환경이었으나 6·25 때 부친이 공산군에게 살해당하고 형이 납북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그 뒤로 ‘흙수저 집안에서 젊은 날을 거칠게 살았다’고 한다. “검정고시도 보고 막노동도 하고 그랬죠. 여기저기 들락날락거리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쉰 넘어 받은 중앙대 예술대학원 수료증이 최종 학력이라고 했다.
―1967년 극단 광장에 들어가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는데,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제대하고 나서 보니(일부에서 ‘월남전 참전용사였다’는 얘기가 나온 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학력이라 할 만한게 없었어요. 직장에 들어갈 여건이 되지 않아 친구 따라 극단에 갔던 건데, 아 참, 제가 소싯적엔 그래도 외모가 괜찮았던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극 무대에 올라서니, 야 이것 정말,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보였습니다.”
―어떤 세계였나요.
“별 존재감 없던 젊은 내가 무대에선 의미 있고 함축된 언어를 토해냈어요. 그걸 본 많은 관객이 또 거기에 반응하며 웃고 우는 게 아니겠어요? 한마디로 황홀했죠. 그때부터 10년쯤 지나니 웬만한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세상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연극은 무대에서만큼은 항상 시대를 앞서 뭔가를 외치고 부르짖을 수 있었던 분야였습니다.”
그 매력에 빠져 청소부터 포스터 붙이기, 연극이 끝난 후 뒷정리까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며 연극에 몸담은 지 50년이 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극이란 대체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시장에 장사하러 나가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의 젊은 날에서 ‘오징어 게임’ 주인공인 쌍문동 성기훈(이정재)의 모습이 비치는 셈이다.
‘대머리 여가수’ ‘따라지의 향연’처럼 한국 연극사에 빛나는 작품들로부터 ‘리처드 3세’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같은 셰익스피어 극이 그의 대표작이었다. ‘백양섬의 욕망’에서 안젤로 역으로 동아연극상(1980),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국전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94)을 받았다. 54년 동안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상당히 일찍 주연을 맡았습니다. 28세 때 나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분한 스탠리 역은 영화에서는 말론 브란도가 분했던 역이었죠.
“아 글쎄 주역급 외모였다니까요, 하하.”
‘오징어 게임’ 9화에서 일남의 정체를 알게 된 주인공 기훈은 ‘돈을 얼마나 쉽게 벌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야?’라 일갈한다. 그러자 일남은 이렇게 반문한다. ‘자네도 벌어 봐서 알잖아, 그게 쉽던가?’
―연기가 쉽던가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른 네 살 때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는데, 명동예술극장에서 미도파백화점 앞까지 관객이 줄을 설 정도로 성황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긴장이 돼서 독백 장면에서 20초 동안 의식을 잃었어요. 유체이탈을 했다고 할까요. 연극에서 20초는 굉장히 긴 시간인데 대사 없이 시간이 마냥 흘렀던 거죠.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납니다. 그런데 당시 관객들은 아마 사고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건 절대로 그 나이 때 해서는 안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지금이라면... 꼭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에요.”
―1987년부터 24년 동안 ‘나라를 대표하는 극단’인 국립극단 배우로 있었습니다.
“연극을 자주 보러 오던 열세 살 연하 은행원 아내와 2년 동안 연애했지만 배곯는 직업이라고 처가 반대가 심했어요. 그러다 국립극단에 들어가니 비로소 월급이란 걸 받을 수 있었고 간신히 결혼 허락도 얻었어요. 가만, 마흔 세 살 때였지... 아마.”
그러고서 낳은 늦둥이 외둥딸은 소속사가 없는 오영수를 위해 지금 그의 비공식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
요즘 유튜브에 들어가면 방송국과 ‘오징어 게임’ 팬들이 올려놓은 오영수의 젊은 시절 TV 드라마 출연 희귀 영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군 검사로 출연해 딱 1분 30초 동안 나왔던 ‘제1공화국’(1981), 군인 출신 광고감독으로 나온 ‘샴푸의 요정’(1988), 성질 급한 조폭 두목으로 등장해 한껏 폼을 잡고 샌드백을 두드리다가 ‘벽돌폰’을 만지작거리던 ‘김형사 강형사’(1990) 등이다. 그런데 정작 기자가 보여준 동영상을 본 오영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으응? 근데 내가... 언제 저런 드라마에 출연했지?”라며 의아해했다.
회차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던 ‘전우’ ‘전원일기’ 같은 TV 드라마에 단발성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국립극단 단원으로 있으면서 ‘아무 배역이나 맡진 않겠다’는 자존심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역할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바로 ‘스님’이었다.
영화 ‘동승’(20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선덕여왕’(2009) ‘무신’(2012)에서 모두 스님 역할을 맡았다. ‘무신’에서의 역할은 팔만대장경을 총감독했던 수기 대사였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영웅’(2016)에선 사명 대사로 분해 품위와 여유, 유머를 갖춘 연기를 보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명당은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에서 “과거사를 청산하려면 먼저 반성부터 하라”는 대쪽 같은 메시지를 선문답의 형식을 빌려 전한다. 이러다 보니 그를 진짜 스님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무렵부터 그를 알아본 해외 팬도 없지 않았다. 2005년 국립극단이 연극 ‘떼도적’을 독일 만하임 쉴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을 때 웬 50대 독일인 신사가 베를린에서 찾아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감명 받아 오영수 배우를 만나러 왔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마 그가 출국해서 공항에서 마스크를 벗자마자 금세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어떻게 해서 ‘스님 전문배우’가 된 것인지요?
“제가 불교 사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점점 외모가 스님을 닮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교의 어떤 점에 관심을 가졌나요.
“그건 ‘자신을 비우고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산길을 걷던 나그네가 예쁜 꽃을 봤을 때 젊은 사람은 그 꽃을 꺾어 가져오고, 중장년은 꽃을 캐서 자기 집 정원에 심고, 더 나이가 들면 그 자리에서 본 뒤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을 가진다고 해요. 일흔 살이 넘으니 그렇게 그냥 두고 다 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도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게 되더군요.”
나그네와 꽃 스토리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삶이냐’에 나오는 이야기에 그가 연령대를 덧붙여 해석한 것이다.
침묵의 언어를 끄집어냈다
오영수는 2014년 셰익스피어 연극 ‘템페스트’(김동현 연출)에 출연할 때 기자와 인터뷰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평행봉 운동을 수십 번씩 한다’고 했다. 정말일까 반신반의했었는데 2년 뒤 연극 ‘장판’에서 도둑 역으로 나와 그걸 무대 위에서 실연(實演)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와-!”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젊은 관객들의 탄성이 터졌다. 이 연극 무대는 특이하게도 2층 구조여서 객석에서 우러러봐야 하는 위치였는데, 당시 20대 남성 관객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공연 전 연출가 이우천이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 얘기를 듣고 원래 대본에서 체조를 하는 장면을 그렇게 바꿔버렸다고 한다.
다시 5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 20분 동안 걸어가 집 근처 남한산성 밑에서 평행봉 50개를 하고 내려온다. “사실 거기가 좀 유서 깊은 장소죠. 남한산성 전적지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육군교도소와 육군체육부대가 있던 곳이니...” 3년 전 급성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다시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평행봉 운동이 큰 힘이 됐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거의 집에 틀어박혀 있고 외출할 때도 누가 알아볼까봐 마스크를 벗는 일이 없지만, 평행봉 근처에서만큼은 정체가 이미 다 노출된 아침운동 동료들밖에 없어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에서 ‘서 있기도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노쇠해 보이는 건 죄다 연기 아니었습니까.
“하하, 그렇게 봐 주면 고맙겠습니다.”
‘오징어 게임’ 촬영은 주로 대전과 경기 안성의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는데, 오영수는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촬영했고 더빙은 올 1월에 끝냈다. 이러다 보니 2019년 ‘노부인의 방문’ 이후로 무대에 통 서지 못해 연극계에선 ‘오영수 선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는 걱정스런 말까지 돌았다. 황금빛 명함을 받고 승합차에 실려 간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게 ‘오징어 게임’ 에 ‘참가’했기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촬영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었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저도 오일남처럼 놀이를 하듯 즐겁게 촬영했던 것 같습니다. 황동혁 감독이 배우를 달달 볶으며 고생시키는 스타일도 아니었고요. 이 줄거리에서 그랬으면 정말 큰일이 났겠죠, 하하. 딱 한번 곤란한 일이 있었는데, 4화에서 참가자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도중 켜켜이 쌓인 침대 맨 꼭대기에 올라가 ‘이러다가는 다 죽어! 나 무서워’라고 절규하는 장면이었어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긴 한데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올라가 보니 진짜로 무섭긴 무섭더라고요. 제작진이 허리에 안전장치를 채워 줘서 그걸 감고 촬영했죠.”
오일남이 정말 공포에 질린 것처럼 절규했던 장면은 100% 연기였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발성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대사가 느릿느릿한데 묘한 운율이 있다는 것이죠. ‘연극적인 대사다’ ‘읊는 것 같다’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무대에 오래 서다 보니 연기란 기(氣)와 호흡으로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마치 시(詩)를 읊듯, 말과 말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의 언어를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그것은 내공의 힘이기도 하죠. 대사를 발화할 때 생각을 먼저 하고 나서 말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생기고 침묵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가 차근차근 ‘호흡을 활용한 연기’에 대해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 6화에서 치매 증상을 겪는 줄 알았던 오일남이 돌연 기훈에게 또박또박 말하는 대목에서 관객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럼 / 자네가 날 / 속이고 / 내 구슬 / 가져간 건 / 말이 되고?’ 여기서 ‘/’가 호흡이라는 얘기다. 이 장면에서 그는 온몸의 기를 얼굴 한 곳으로 몰아 순식간에 엄한 표정으로 강렬하게 연기했다고 한다.
오영수의 독특한 발성을 연극계에서 꼭 좋게만 봤던 것은 아니었다. 관객 입장에선 다소 어눌한 듯 들리기도 했다. 한 연출가는 “내 연출 방향과 맞지 않는 대사 처리 방식이어서 애를 좀 먹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국내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이해랑연극상의 한 심사위원은 “사실 그 발성 때문에 지금까지 상을 주지 않았던 건데... 이젠 좀 달리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사뿐 아니라 몸짓 하나하나가 연기라는 시청자가 많습니다.
“손끝이 살아나지 않으면 연기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 연기 초보자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멍청히 서 있게 되죠. 손이 살아 움직이도록 기력을 넣어야 연기가 되는 겁니다. 그게 성공하고 나면 그떄서야 무대에서 객석이 보이게 되죠. 전 처음에 어머니께서 객석 맨 앞자리에 계셔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나중에야 객석이 전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연기 철학에 비춰보면 의외로 상당히 계획적으로 머리를 쓰는 연기로도 보이는데, 그는 바둑 실력이 아마 6단이라고 한다.
―9화에서 정체를 밝히는 장면의 연기도 깊은 인상을 줬습니다. 드라마 속 설정대로 1회 게임이 1988년에 열렸으며 해마다 400명 이상이 희생됐다고 볼 때, 오일남은 분명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한 범죄자가 되죠. 그런데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는 모습이 마치 인생을 달관한 현자(賢者)처럼 보여 오히려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보인 이유가 있어요. 마지막 장면 촬영에 앞서 감독에게 ‘머리와 수염을 다 깎고 연기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머리 깎고 나오는 거야 뭐 저는 기본이죠, 하하. 스님 역을 많이 하다 보니, 오일남이 세상을 떠날 때는 머리카락이나 수염처럼 몸에서 걸리적거리는 걸 다 버릴 것 같았어요.”
―오일남은 왜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 기훈을 불렀을까요?
“기훈과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자네와 함께 해서 즐거웠네’라고 털어놓잖아요. 선한 심성을 지녔으면서도 게임에서 1등을 한 기훈에게 ‘세상은 자네가 믿는 것처럼 선하지 않다’는 충고를 한 것은, 오일남은 자신이 만든 질서 속에서 세상이 결코 정의롭고 믿을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을 기훈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란 대사가 나오게 된 겁니다.”
―그게 전부였습니까?
“동시에 뭔가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며 어느 정도 용서를 구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연기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인생을 관조하는 심정으로 말이죠. 제 얼굴이 화면에서 그렇게 크게 클로즈업된 건 처음 있는 일인데, 제가 제 얼굴을 보는데도 좀 섬뜩하더라고요.”
―그럼 길바닥에 쓰러진 노숙자가 자정 직전에 구조되는 광경을 오일남은 끝내 보지 못한 겁니까?
“네, 못 보고 죽은 거예요.”
―그런 엄청난 부자가 마지막 순간에 가족 없이 쓸쓸히 죽어가는 장면이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습니다.
“평생 자신을 위한 돈과 권력과 재미를 열심히 추구했지만, 결국 가까웠던 이들은 모두 떠나버려 마지막 순간엔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되죠.”
―오일남은 도대체 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게임에 뛰어들었던 걸까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자칫 발을 헛디디면 총을 맞을 수 있고, ‘달고나 뽑기’도 한순간의 실수로 죽을 수 있잖아요. ‘줄다리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락사할 수도 있었죠. 초반에 게임을 일시 중단하는 데 동의한 것도 왜 그랬던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하, 드라마를 너무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다만 오일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집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걸 이해해야죠. 그의 행동은 모두 커다란 ‘오일남 게임’의 일부로 봐야 합니다. 게임을 계속할지를 정하는 찬반투표에서 ‘×’를 누른 것도 ‘어차피 돌아올 사람은 다 돌아올 테니 더 재미있게 놀아 보자’는 마음에서였을 겁니다. 눈여겨 봤던 기훈에게는 직접 동네로 찾아가 라면을 부숴 먹으며 설득하기도 했고요.”
―오일남이 침대 위에 올라가 ‘그만 하라’고 절규했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가지가 다 있었을 거예요. 너무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면 게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거란 경고인 동시에, 집단 살인극이 벌어지는 현장이 몸서리처진다는 진짜 인간적인 고백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7화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 오일남은 프론트맨(이병헌)에게 외국인 VIP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미 구슬치기 게임에서 탈락한 뒤라 충분히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건 오일남이 VIP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기보다는, 감독이 시청자들에게 아직 오일남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했던 장치로 봐야겠죠.”
―극중 오일남과 성기훈이 사실은 부자 관계였을 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저도 보긴 봤는데, 에이,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던 게임은 실제로 어린 시절에 해봤던 겁니까?
“딱지치기, 구슬치기, 줄다리기는 정말 많이 해본 놀이였어요. 하지만 사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오징어 게임’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다음 세대에서 하던 놀이였던 것 같아요.”
―주인공을 맡은 이정재가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습니다. 오일남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다채로운 표정 속에서 감정의 완급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결코 밀리지 않더군요.
“이번에 처음으로 이정재씨와 작품을 같이 해 봤는데, 대단히 인간적이고 성실한 배우였어요. 호흡도 아주 잘 맞았고요. 상우 역을 맡은 박해수씨야 뭐 연극계에서 이미 잘 알던 후배고요. 그리고 참, 이병헌씨가 그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말은 감독이고 누구고 전혀 얘기해주지 않아서 통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서 오일남이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 어떤 사람이 손으로 제 눈을 쓰윽 감겨 주더군요. 도대체 누군가 하고 나중에 슬쩍 눈을 떠 보니까 웬 잘생긴 사람이 떡하니 서 있더라고요. 가만히 보니 TV에서나 보던 이병헌씨여서 ‘으잉? 아니 자네가... 여기서 왜 나와?’ 하고 깜짝 놀랐죠.”
사실 ‘오징어 게임’에는 오영수의 연극계 후배들이 꽤 많이 출연한다. 상우 역 박해수를 비롯해 장기 매매에 가담하는 의사 역 유성주, 주인공 기훈의 전처 역인 강말금, 홍우진(첫 번째 게임에서 총을 맞고 기훈에게 매달리는 참가자 역), 김동현(줄다리기 게임 때 오일남에게 ‘서 있을 힘도 없어 보인다’고 핀잔을 주는 참가자 역), 이지하(목매 자살한 참가자의 아내 역) 등이다. 다들 연극에선 주연급이다. 오영수는 “나보다도 그들이 무대에서 다진 연기 솜씨로 드라마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황동혁 감독은 같이 일해보니 어땠습니까?
“역사 의식이 투철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표현력, 열정도 갖춘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배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찾아내 부드럽게 끌어내는 능력 역시 대단한 감독이에요.”
인생에 승자가 어디 한 명뿐인가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성공 이유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건 아니건 할 것 없이 드라마 속 게임을 통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가 있을 법하지 않은 게임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도 관객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부와 권력을 움켜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약자들을 휘두를 수 있는 잘못된 세상이 보이는 것이죠.”
―결국 드라마 속 게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오일남은 단 한 사람의 승자가 아니면 모두 다 패자라는 편견을 지닌 인물이에요. 그런데 2등은 3등에게 승리한 사람이고, 4등은 5등, 5등은 6등을 이긴 사람 아닌가요? 더 등수가 낮은 그 많은 사람들 역시 존재 의미가 있는데, 그 사실을 무시하는 현대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부조리가 그의 게임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드라마의 주제였던 걸까요?
“제 생각에, 진정한 승자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면서 내공을 지니고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오징어 게임’ 마지막에서 1등을 한 주인공이 오일남이 누운 병상을 떠나며 드러낸 공허한 뒷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그 모습이 어디 승자로 보이던가요? ‘승자’가 승자가 아니고 ‘패자’ 역시 패자가 아니라는 주제를 드라마는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깐부 치킨’ 광고 제의를 거절했다는 소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깐부’란 개념은 인간 사이의 신뢰와 배신을 상징하는 것이고 드라마 주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런 의미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고사했던 것인데, 일부 보도된 것처럼 ‘배우로서 자리를 지키려고 CF를 찍지 않겠다’는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광고를 찍은 적도 있어요. 만약 그런 이유를 댔다면 연극계에서 자칫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비난을 받을 일이라고요?
“아, 제가 거절하면서 정말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미 여러 광고에 나오고 있는) 이순재 선배, 신구 선배는 뭐가 되겠어요?”
그가 예전에 찍었다는 광고는 2015년 이동통신 CF였는데 가수 설현과 함께 배를 타고 촬영했다. 이떄도 스님 역이었다. 당시 설현의 대사가 “스님, 기변하셨다면서요?”였고, 스님은 “새로운 만남을 쫓기보다는, 오랜 만남과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지요”라는 깨우침을 준다.
―좋은 배우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합니까.
“배우에겐 무대가 삶의 목적이고 의미입니다. 그런데 무대는 현실을 반영하는 공간이죠. 그렇게 세상의 모습을 변주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목적이 뭔지 풀어나가고 말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그러자면 연극과 영화는 사건만 담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극처럼 그 속에 인생이 있어야 하고 노년 역시 다뤄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작품이 드물다는 건 아쉽습니다.”
―무대 연기와 스크린 연기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습니까?
“예전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지금은 호흡과 내공이 제대로 작용하면 결국 좋은 연기라는 점에서 같게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새 작품 제의가 들어오진 않나요.
“연극과 CF 제의가 몇 편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금 이 상황에 아직 적응이 된 게 아니라서요. CF는 ‘돈 주는데 왜 하지 않느냐’며 하자는 경우도 있는데, 돈 때문이라면 그게 다 욕심 아니겠어요. 하더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거나 공익적인 광고에 출연하려는 생각입니다. 집사람이 처음엔 ‘좀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요즘은 제 뜻을 이해해 줍니다.”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 시즌2 구상을 밝히면서 2015년 게임 우승자였다가 게임의 현장 책임자가 된 프론트맨의 과거에 대한 설명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오일남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아직 제의가 들어오진 않았습니다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또 출연해야죠. 그런데 아마 시즌1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나올 겁니다. 9화 프론트맨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정장을 입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등장할 때처럼 말이죠, 하하.”
―아직도 사람을 믿습니까?
“그럼요, 믿고 말고요. 지금껏 크든 작든 많은 사람들에게 뭔가 받아 왔으니까요. 이젠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주면서 베풀어야 할 떄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오일남이 내 분신일 수도 있다’는 말과는 달리 현실의 오영수는 ‘안티 오일남’인 듯했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음... 이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초상을, 그리고 인생의 깊이를, 호흡과 내공을 통해 보여준 배우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늘 평행봉으로 체력을 유지하면서 한 미수(米壽·88세) 까지는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만 맘대로 될진 모르겠어요. 제가 우리말 중에 ‘아름답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저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셰익스피어 극 ‘템페스트’의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이제 족쇄를 풀어주십시오’라고 말하잖아요. 그 역할을 맡았을 때 그 부분이 꼭 나이든 배우가 무대를 떠나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게 퇴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처럼 늦은 나이에 세계에 알려진 배우가 됐습니다.
“그게 뭐, 설사 그렇더라도 우연한 기회에 행운처럼 온 게 아니라, 지금까지 작은 제 몫 가운데서 한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온 것에 대한 하나의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황동혁 감독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오징어 게임’에 출연하지도 못했을 게 아니겠어요? 각자의 길에서 그렇게 묵묵히 몫을 다해 온 사람들이야말로 모두 자기 삶에서 1등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인터뷰 뒤 기자와 나눈 카톡 대화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대로 갈 수밖에. ㅎㅎ’
☞오영수
본명 오세강. 1944년 경기 개풍군(현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포함됨)에서 태어나 파주에서 자랐다. 동국대 예술대학원을 수료했다. 1967년 극단 광장에 입단, 1968년 ‘낮 공원 산책’으로 데뷔했다. 극단 성좌·여인·자유를 거쳐 1987~2010년 국립극단 배우로 있었다. ‘파우스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리처드 3세’ ‘베니스의 상인’ ‘템페스트’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동아연극상과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았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 ‘동승’ 등에서 노승 역할로 주목을 받았고, 드라마 ‘선덕여왕’ ‘무신’ 등에서도 승려 역할로 출연해 ‘스님 전문배우’라는 말을 얻었다. 2021년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배우 인생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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