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간 69이닝' 비운의 일본 손수건 왕자, 33세 눈물의 은퇴 경기
[OSEN=이상학 기자] 1군에서 통산 15승을 거둔 일본 투수가 은퇴 경기를 가졌다. 고교 시절 '손수건 왕자'로 불리며 국민적인 인기를 모았던 니혼햄 파이터스 우완 투수 사이토 유키(33)가 그 주인공이다.
사이토는 지난 17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돔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홈경기에 7회 구원등판했다. 이달 초 현역 은퇴를 선언한 사이토의 은퇴 경기. 퍼시픽리그 6위로 일찌감치 우승이 좌절됐지만 탈꼴찌 희망이 남은 니혼햄은 4-3, 1점차 리드 상황에 사이토를 마운드에 올렸다.
지난 2019년 이후 2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선 사이토는 선두타자 후쿠다 슈헤이 상대로 7구 승부 끝에 볼넷을 허용했다. 최고 구속은 129km. 마지막 7구째 투심 패스트볼을 바깥쪽 낮게 던졌지만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이 공을 끝으로 사이토의 11년 프로야구 선수 생활도 마감됐다.
구리야마 히데키 니혼햄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와 사이토를 격려한 뒤 공을 넘겨받았다. 교체했다. 마운드를 내려가는 사이토를 향해 관중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웃으며 모자 벗고 화답한 사이토는 동료들의 환대 속에 덕아웃으로 돌아왔지만 이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애써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4-3 니혼햄의 승리로 끝난 뒤 거행된 은퇴식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지켜보던 팬들도 슬퍼하며 선수 사이토와 작별했다.
사실 기록만 보면 은퇴식을 받을 만한 선수는 아니다. 지난 2011년 프로 데뷔 후 통산 89경기에서 15승26패 평균자책점 4.34 탈삼진 209개. 2011년 첫 해 6승6패 평균자책점 2.69가 최고 성적이다. 2012년 완봉승 포함 5승을 거두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지만 2013년부터 1군보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거듭된 부상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최근 3년간 1군 전력 외로 분류됐다.
하지만 사이토는 일본야구의 상징적인 존재로 각인돼 있다. 와세다 실업고교의 에이스 출신으로 지난 2006년 여름 고시엔대회에서 '라이벌'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를 꺾고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도마고마이 고교와의 결승전에서 15이닝 완투 경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5회 무승부로 우승팀을 가리지 못하자 그 다음날 재경기가 열렸고, 사이토는 또 선발로 나서 9이닝 완투승 괴력을 과시했다. 결승전 2경기 연투 포함 고시엔 여름 대회 15일간 7경기에서 4연속 완투를 하는 등 69이닝 동안 948구를 던졌다.
곱상한 외모에 마운드에서 파란색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모습도 큰 화제가 됐다. 군마현에 사는 어머니가 고이 접어준 손수건으로 긴박한 상황에서 정성스럽게 땀을 닦는 행동이 유명세를 타면서 '손수건 왕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순식간에 국민적인 스타덤에 올랐지만 프로 대신 대학 진학을 택했다. 와세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팀을 33년 만에 우승으로 이끄는 등 4년간 31승15패 평균자책점 1.77 탈삼진 323개로 활약했다.
그러나 고교와 대학 시절 혹사 여파인지 프로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4개팀 경합 끝에 2011년 드래프트 1라운드로 니혼햄에 입단, 2년차까지 선발투수로 활약했지만 3년차 때 어깨 관절 와순 파열이 발견되면서 1경기 등판에 그쳤다. 이후 팔꿈치 부상까지 찾아와 내리막을 걸었다.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고교 시절 150km를 넘던 구속이 130km 언저리에서 올라오지 않았고, 33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정했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사이토는 "11년이 매우 짧게 느껴진다. 오늘이 마지막이란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고교 3학년 여름 고시엔부터 사이토 유키라는 야구선수를 오랫동안 지켜봐주신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경기 후에는 마지막 등판에서 볼넷 허용을 아쉬워하며 "끝까지 모두에게 폐를 끼쳤다. 팬 분들의 박수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데 힘이 됐다"고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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