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준경묘/임병선 논설위원

임병선 2021. 10. 18. 05:0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강원 삼척시 미로면의 준경묘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차를 대고 고빗길을 30분 정도 올라가니 금강송들이 능(陵)을 향해 일제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능을 바라볼 때 왼쪽 나무들은 오른쪽으로, 건너편 소나무들은 왼쪽으로 기울어 서 있다.

능 위에 올라 전체를 살피니 왜 이곳에 묘를 썼는지 이유가 한눈에 들어온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원 삼척시 미로면의 준경묘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차를 대고 고빗길을 30분 정도 올라가니 금강송들이 능(陵)을 향해 일제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능을 바라볼 때 왼쪽 나무들은 오른쪽으로, 건너편 소나무들은 왼쪽으로 기울어 서 있다.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의 묘가 강원도에 있다는 얘기는 조선 전기부터 전해졌는데 공인을 받지 못했다. 삼척에 있다, 태백 황지에 있다 말들이 많았다. 송강 정철이 관찰사로 일하며 선조에게 보고했으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척됐다고 한다. 그러다 1899년 왕실 묘역으로 인정받아 지금도 매년 4월 20일 제향을 올린다.

평일이라 인적이 드물어 한 가족이 묘 앞에 돗자리를 펴고 독차지하고 있었다. 능 위에 올라 전체를 살피니 왜 이곳에 묘를 썼는지 이유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두대간의 등줄기 바로 아래 이렇게 안온한 곳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마침 야권의 대선 유력주자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겼다고, 경기 김포의 한 아파트가 왕릉이 빤히 보이는 위치에 지어져 허물어야 한다는 얘기가 막 나오던 즈음이었다. 준경묘 자리를 잘 잡아 조선이 500년을 버텼다는 믿음이 전해진다고 했다. 묘를 뒤로하며 걸어나오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임병선 논설위원 bsnim@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