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감한 사안은 뭉개기, 정권 앞에 풀잎처럼 누운 감사원

조선일보 2021. 10. 1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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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강민아 감사원장 권한대행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감사원 과장급 간부가 업무 시간에 건설업체 관계자와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와 관련 있는 업체와 동반한 것이어서 유착 의혹이 큰데도 솜방망이 처분에 그쳤다. 감사원이 내부 직원의 일탈엔 이토록 관대한데 어느 공직자가 감사 결과에 수긍하겠는가.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발표를 마지막으로 정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은 아예 감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지난 2월엔 금강·영산강 보 해체, 6월엔 백신 조기 도입 실패에 대한 감사 청구를 접수시켰으나 감사원은 몇 달째 착수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고 있다. 두 청구는 국민적 관심이 높아 마땅히 감사원이 정책 타당성과 개선책을 제시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국민·공익 감사 청구가 들어오면 1개월 내에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부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뭉개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4월엔 TBS가 ‘감사 대상’이라고 했다가 정작 넉 달 뒤 감사 청구가 들어오자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행정안전부에 떠넘겼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대북 사업을 하는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벌에 입찰 없이 2500억원대의 새만금 태양광 일감을 몰아주었다는 의혹도 ‘경찰·공정위가 수사·조사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감사하지 않기로 했다. 이달 초엔 ‘대장동 게이트’ 관련 공익 감사가 접수됐는데, 역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각하·기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감사원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떠난 이후 정권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사안은 감사에 나서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한다. 정권 눈치를 보며 공직 비리를 방치·묵인하는 감사원이 왜 존재해야 하나. 공공 이익의 마지막 수호자가 돼야 할 감사원까지 권력 앞에서 풀잎처럼 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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