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군사 우방이자 탈레반 후견인…카타르의 대담한 ‘중재 외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1. 10.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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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중동천일야화]

카타르가 자주 눈에 띈다. 아프가니스탄 뉴스의 절반이 카불발 소식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전한다. 카타르가 현재 명실상부한 탈레반 후견인이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도왔다. 2013년에는 아예 탈레반 사무소를 도하에 열어주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염두에 두고 탈레반과 협상을 대비한 당시 미국 정부의 포석이기도 했다.

카타르외교

탈레반 창설 멤버이자 핵심 지도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카타르에 머물며 큰 빚을 진 셈이다. 왕실은 바라다르와 그 동료들을 일종의 외교단처럼 대우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을 틈틈이 자국 내 외교단과 어울리게 하면서 국제사회를 경험시켰다. 해외파 탈레반 인사들이 국제 정세와 분위기를 익히는 계기였다. 결국 작년 2월 29일 도하에서 탈레반 대표 바라다르는 트럼프 정부의 칼리자드 미국 대표와 마주 앉았고 미국은 철군에 합의한다. 그리고 올 8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을 단행했고 탈레반은 카불을 장악했다. 카타르 국왕은 카불 함락 후 귀국길에 오르는 바라다르를 만나 덕담을 해주었다는 후문이다.

카타르의 외교는 기이하다. 편을 가늠하기 어렵다. 일단 전형적인 친미 왕정 국가로 보인다. 중동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군사 우방이다.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을 관할하는 미 중부군 현지작전사령부와 미 공군이 주둔하는 우데이드 기지가 그 상징이다. 브루킹스 도하센터를 비롯, 유수의 연구 기관 및 미국 유명 대학 현지 캠퍼스도 포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는 분명 친미·친서방 성향이다.

하지만 반미 세력, 심지어 역내 테러 혐의 집단과 협력도 서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란과 가깝다. 탈레반은 물론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등 이른바 반미 ‘저항의 축’이 카타르 도움을 받아왔다. 이뿐만 아니다. 중동 각국 반정부 운동을 주동하는 무슬림 형제단 핵심 인사들을 보호하고 은신처를 제공했다. 걸프 왕정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사우디는 참지 못했다. 2017년 카타르 단교를 선언했다. UAE, 이집트 등이 동참했었다. 형제 국가로 여겨 온 카타르가 왕정의 최대 위협 세력인 이란과 사이가 좋은 것도 불만인데, 각국 반정부 단체들까지 지원하는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 올 1월 초 사우디 알울라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화해했지만 앙금은 남아 있다. 걸프 형제국과 안보를 함께하면서도 터키와 적극적 군사 협력에 나서고 있다. 외교의 상궤에서 벗어나 있다.

카타르의 속내는 무엇일까? 본래 카타르 왕가는 아라비아반도 중부 네즈드 지방 출신이다. 사우디 왕가와 뿌리가 같다. 사우디의 통치 이념인 근본주의 와하비즘도 공유한다. 둘은 형제 국가였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까지 카타르는 사우디와 막역했다.

1995년 카타르의 궁정 쿠데타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부친을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하마드 전 국왕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사우디의 압박을 뚫고 가스 개발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소득 국가로 거듭났다. 근본주의 전통의 이슬람 통치 이념을 가진 카타르이지만 부국으로 도약하자 욕심이 생겼다. 고만고만한 걸프의 한 나라로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슬람의 보수적 신념과 가치를 지키면서도 동시에 현대 문명의 전위에 서고 싶었다. 이슬람 문화의 허브 역할을 자임함과 동시에 국제 무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기후변화 당사국 회의 등 일련의 국제 회의와 2022년 월드컵 등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과감한 국내 정치 행보도 뒤따랐다. 입헌 왕정을 선포했다. 그러나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대중의 요구에 따라 점진적으로 절차 민주주의는 받아들이되, 표의 흐름을 주목했다. 냉전 해체, 9·11, 그리고 아랍의 봄 등 10년마다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 이후 선거에서 중동의 유권자들은 대개 이슬람 정치 세력을 지지했다. 미국 등 서방은 세속적 민주주의 세력의 집권을 기대했지만 표는 이슬람 세력으로 향했다. 중동 저잣거리 정서였다. 카타르는 이 추세에 천착했다. 권력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면 이슬람을 끌어안고 이를 바탕으로 입헌군주제의 정치 지형을 다지는 게 안전했다. 흔히 세속화를 전제로 한 민주화에 익숙하지만, 카타르는 이슬람으로 수렴하는 민주화를 상상하고 있다.

그 이유로 카타르는 중동 각처의 이슬람 정치 세력의 피난처를 자임하고 있다. 동시에 서구의 경제 발전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와하비즘 보수 이슬람 전통 위에 현대 문명 발전의 마천루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슬람의 이념을 폭력화하는 집단을 설득하고 때론 압박해서 공존이 가능한 이들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탈레반에 대한 카타르 왕실의 태도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금번 탈레반의 권력 복귀는 카타르에 시험대이자 기회다. 현시점에서 탈레반을 움직일 수 있는 나라는 그나마 카타르다. 탈레반 지도자들도 도하의 메시지는 무시할 수 없다. 카타르는 내친김에 역내 분쟁의 중재자가 되겠노라 천명했다. ‘중동의 제네바’를 염두에 두는 듯하다. 넉넉한 재정과 위성방송 알자지라도 한몫할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카타르의 역할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 탈레반을 잘 길들일 수만 있다면 카타르의 국가 위상은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모두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누구와도 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탈레반 내부의 균열과 IS 등 테러 세력의 준동이 문제다. 아프가니스탄이 헝클어질 경우 카타르는 큰 부담을 져야 한다. 지난주 연이은 시아파 모스크 폭탄 테러를 보면 녹록지 않다. 탈레반 설득과 압박을 통한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월드컵을 앞둔 카타르가 부여잡은 무거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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