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10명 중 7명 "최근 이웃 가게 문닫는 것 봤다"

김신영 기자 2021. 10.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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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영업자 길거리 경기 조사

“주변에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는데 우리 상가에서 손님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고, 이대로면 나도 별수 없을 것 같다.”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폐업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연합뉴스

지난해 대전에서 카페를 연 33세 여성 사장은 길거리 경기 조사에서 이렇게 어려움을 전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69.4%)이 지난 3개월 사이 이웃한 가게의 폐업을 지켜봤다고 답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매출은 줄고, 임차료 부담 등은 커지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웃 가게는 같은 골목의 가게들을 뜻한다.

어렵지만 가게 문을 열고 있는 자영업자 중에도 상당수는 빚을 내거나 그동안 번 돈을 써가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했다. 대전에서 한식당을 하는 57세 여성은 “장사하면서 돈을 벌기는커녕 계속 마이너스만 찍는다. 저축한 돈을 다 쓰고 있다. ‘투잡족’(two job·부업) 노릇까지 하는데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든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약 2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보다 훨씬 높다.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경제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문 닫는 가게 늘어··· 나도 암담하다”

코로나 4차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지난 3개월간 자영업자들이 매일 지켜보고 피부로 느낀 ‘골목길 경기’는 역시 차갑게 식어 있었다. 2015년부터 경기도에서 스포츠센터를 해온 45세 여성은 “코로나 영향으로 운동 시설에 오는 사람이 끊겼다. 경기는 나쁘고 코로나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힘이 들어 자영업을 접을까 한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이 조사 과정에서 들려준 목소리는 이런 숫자들보다 훨씬 무거웠다. 경기도에서 카페를 하는 27세 여성은 “문을 닫는 가게들이 자꾸 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줄었다. 매출액이 없으니 대출도 안 나와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하다”고 했다.

서울에서 미용실을 하는 51세 여성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자영업자는 매출이 감소하면 일상 유지가 안 된다”고 호소했다. “한 달에 한 번 오던 손님이 두세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합니다”라고 했다.

◇“인건비 부담에 직원 내보냈다”

자영업자들은 매출은 감소하는데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 “손에 쥐는 돈이 너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코로나 와중인데도 내년에 더 오를 최저임금 등 인건비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졌다고 한 이가 많았다. 응답자의 25%는 지난 3분기 직원을 줄였고, 20%는 올해 안에 직원을 더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기도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는 55세 남성은 “소비자의 구매력이 낮아져 매출이 주는데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 비용은 계속 오른다. 직원 고용을 할 여유는 전혀 없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누적되어 병이라도 오면 생계가 어찌 될지 걱정된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2016년부터 ‘방 탈출 카페’(추리 게임을 하는 카페)를 하는 41세 남성은 인건비 부담으로 쉬는 날,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본적인 인원이 상주해야 하는 사업이지만 매출은 줄고 2022년 최저임금은 더 올라 막막합니다. 사장인 제가 문 여는 시간부터 닫을 때까지 매일매일 출근하지만 그래도 적자입니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9160원으로 올해보다 5% 오른다.

경기도에서 자동차 부품점을 하는 53세 남성은 “‘IMF’(1990년대 말 외환 위기)도 겪어봤지만 지금의 경기가 그때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주위의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버티는 중입니다. 매출이 감소하다 보니 직원은 절반으로 줄였는데 직원을 더 줄이거나, 이 상태로 그냥 폐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 악화로 직원을 내보내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달 2만6000명이 줄었다.

◇“자영업자 지원, 현실 더 반영해야”

응답자의 64%는 “자영업자 대상 재난지원금을 받았다”고 했지만, 절반 이상(53%)이 “코로나로 입은 피해에 비해 부족하다”고 답했다. 재난지원금을 받은 자영업자들은 평균 386만원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10명 중에 3명은 “200만원 미만을 받았다”고 했다.

2018년부터 서울에서 양식집을 하는 37세 남성은 “장사는 잘되는 달 있고 매출이 감소하는 달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대로 특정 기간을 찍어서 장사가 조금이라도 잘되면 지원금을 안 주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며 “소상공인 지원금을 짜는 공무원, 장사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미용실을 하는 57세 여성은 “작년도 매출이 너무 적었는데 올해 조금 올랐다고 소상공인 지원금에서 탈락했다. 정부는 현실을 모르고 숫자만 놓고 계산을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청소 용역업을 하는 54세 남성은 “코로나로 대면 영업을 못 하니 거래처 확보가 어렵다. 사업이 어렵지만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한 번도 못 받았다. 기준을 보다 세심하게 설정했으면 한다”고 했다.

정부는 코로나 확산 이후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이달 초엔 손실을 80% 보상해주겠다는 추가 대책도 내놓았다. 조사에 응한 자영업자들은 그러나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 기준이 불합리하거나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자영업자 손실보상책도 직접적인 영업 제한 업종으로 대상을 한정해 여행업·공연업 등 피해가 큰 일부 업종이 제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길거리 경기’ 조사 방법은?]

조선일보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여론조사회사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하는 ‘자영업자 길거리 경기 조사’는 800명의 자영업자를 패널(조사 대상)로 선정해 3개월마다 실시하는 추적 조사다. 올해 3분기를 대상으로 첫 조사가 진행됐다.

800명의 패널은 서울과 경기,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4개 광역시에서 음식점, 숙박업, 학원업 등 60개 업종을 대상으로 선정했고, 분기별 정기 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업종 선정은 지역별·업종별 실제 비율 등을 반영했다.

800명의 자영업자들을 ‘길거리 경기 조사관’으로 삼아서 조사하는 방식의 장점은 동일한 응답자들이 지속적으로 자영업 영업 상황, 경기 변동 등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회성 설문 조사 방식과 달리 서민 경제의 ‘실핏줄’인 자영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계속 따라가면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객관식 답변 수집에 머물지 않고 자영업자들이 하루하루 보내는 골목 상권의 현실을 육성으로 전달받는 방식을 병행한다. 패널이 운영하는 가게나 사업체뿐만 아니라 주변 가게들의 상황 등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폐업 등으로 제외되는 패널은 동일한 업종과 지역에서 충원하게 된다. 이번 첫 조사는 8월 말~9월 초에 걸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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