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대하는 이정민의 자세 "오늘 우승했어도 내일 망가질수 있는게 골프"

이규원 2021. 10. 18.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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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일 버디 10개 보기 1개 이정민, 초대 '공격 골프 여왕' 우뚝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 역전승
'필드의 구도자' 별명 "골프에 완벽이란 없다..계속 노력하겠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이정민. [KLPGA 제공]

(MHN스포츠 이규원 기자) "누구를 이기고, 누구를 끌어내리고 앞서가는 건 싫다. 동반자와 경쟁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얼마나 심하냐고들 하시는데 한 번도 성적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없다. 오늘 우승했어도 내일 망가질 수 있는 게 골프다. 천재라면 쉬엄쉬엄하겠지만 나는 계속 노력하겠다"(이정민)

'필드의 구도자' 이정민(29)다운 '어록'같은 우승 소감이 쏟아졌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게 그는 놀라울 정도의 평정심으로 온전히 자신의 골프를 대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정민(29)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5년 7개월 만에 우승하며 초대 '공격 골프 여왕'에 올랐다.

이정민은 17일 전북 익산시 익산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10개를 뽑아내는 맹타를 휘둘러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KLPGA투어 사상 처음으로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으로 치러졌다.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은 앨버트로스 8점, 이글 5점, 버디 2점, 파 0점, 보기 -1점, 더블보기 이상 -3점을 매겨 순위를 가린다. 같은 타수라도 버디가 많은 선수가 훨씬 유리하기에 공격적 플레이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선두 박민지(23)에 8점 뒤진 채 최종 라운드에 나선 이정민은 버디 10개에 보기 1개로 무려 19점을 쓸어 담은 끝에 최종합계 51점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2016년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통산 8승을 달성한 뒤 긴 침묵에 빠졌던 이정민은 47점의 안나린(25)을 4점 차로 따돌리고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장타와 탄도 높은 아이언 샷은 국내 최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정민은 2017년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우승은 고사하고 상위권 성적이 눈에 띄게 줄어 사라져가는 듯했지만, 서른 살을 앞두고 재기했다.

이정민의 티샷. [KLPGA 제공]

먼저 경기를 끝내고 18번 홀 그린 옆에서 기다리던 이정민은 우승이 확정되고 동료 선수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자 환한 미소로 우승의 기쁨을 표현했다.

그는 당장의 성적보다는 스윙의 완성도에 더 관심이 많다.

이정민의 관심은 순위와 상금이 아니다. 완벽한 스윙과 샷을 만드는 데만 전념한다. 완벽한 스윙은 자신이 원하는 스윙이다.

자연스럽게 이정민의 삶은 골프뿐이다.

골프 말고는 즐기는 건 겨울철 스키가 고작이다. 일과는 온통 체력 훈련과 샷 연습으로 채워진다.

동료 선수들은 이런 이정민을 '구도자'라고 표현한다.

성적과 돈, 명성을 좇는 게 아니라 골프를 '도' 닦는 듯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정민은 2016년 3월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8승 고지에 오른 이후 5년이 넘도록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우승만 없었던 게 아니라 상위권 입상도 드물었다.

이정민은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얼마나 심하냐고들 하시는데 한 번도 성적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원하는 골프가 나오면 성적은 좋았다. 그런데 원하는 샷과 퍼트가 안 나오니 안타까웠을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정민은 지난 5년을 '상처'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상처'는 실패 때문에 생겨났고 '두려움'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무서워서 자라났다.

이번 우승은 상처를 씻어내고 두려움을 이겨낸 결과라고 이정민은 강조했다.

그는 "우승권에 다가가도 상처 때문에 물러나곤 했다. 이번에 극복했으니 다음에도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이정민은 퍼트에 그동안 많은 공을 들였다.

그는 "우승 퍼트를 마치 1번 홀 퍼트인 양 해내고,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퍼트도 무심히 해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7승 도전에 실패한 박민지는 사상 첫 시즌 상금 15억원 달성에 600만원을 남겼다. [KLPGA 제공]

'별짓'을 다했다는 이정민은 "대회 때 눈을 감고도 쳐보고, (볼이 아닌) 딴 데 보고도 쳐보고, 엄청 빠른 스트로크도 해봤다"고 털어놨다.

이정민은 이번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최근 5년 동안 가장 마음에 드는 경기력을 발휘했다고 자평했다.

"최종 라운드에 그것도 후반에, 막판 승부처에서 잘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는 이정민은 "리더보드를 본 순간부터 겁먹지 않고 내가 해야 할 걸 해냈다"고 자신을 칭찬했다.

이정민은 "15번 홀을 마치고 리더보드를 보고선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은 3개홀을 모두 버디를 잡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정말 해냈다. 온전히 집중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앞서 8번 우승은 하다 보니 덜컥 한 것이었다면 이번 우승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따낸 것이라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민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이란 없기에 노력에는 끝이 없다"고 '구도자'의 길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우승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오늘 우승했어도 내일 망가질 수 있는 게 골프"라는 이정민은 "천재라면 쉬엄쉬엄하겠지만 나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우승 상금 1억8천만원을 받은 이정민은 상금 7위(5억3천199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안나린은 17번 홀 버디 퍼트가 빗나가면서 사실상 우승의 희망을 잃었다.

두 차례 칩샷 버디를 포함해 6개의 버디를 잡아내며 16번 홀까지 선두를 달렸던 안나린은 막판 3개 홀에서 1개의 버디도 뽑아내지 못해 통산 3승을 다음으로 미뤘다.

버디 8개로 16점을 보탠 장수연(27)이 박민지(23)와 함께 공동 3위(45점)에 올랐다.

시즌 7번째 우승 기대가 높았던 박민지는 6번 홀(파5)에서 두 번째 샷을 페널티 구역으로 날린 데 이어 네 번째 샷이 그린을 넘어가는 실수가 이어진 끝에 더블보기를 적어낸 게 뼈아팠다.

박민지는 사상 첫 시즌 상금 15억원 달성에 600만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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