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정착 이끈 YS정부 '경제通' [고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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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정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이경식씨가 향년 88세의 나이로 지난 15일 별세했다.
김영삼정부 출범 후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93년)에 취임했고, 한은 총재(1995∼1998년)까지 맡아 김영삼정부의 대표적 경제 관료로 꼽힌다.
결국 이 전 총재는 외환위기 당시 1997년 12월 임창렬 당시 경제 부총리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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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경북 의성 출신인 그는 1957년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 미네소타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7년 세종대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1957년 한은 조사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기획원 기획국장(1971년), 체신부 차관(1976∼1979년)을 거쳐 대우자동차 사장(1987년), 한국가스공사사장(1991년) 등 민간·공기업 대표도 역임했다.
김영삼정부 출범 후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93년)에 취임했고, 한은 총재(1995∼1998년)까지 맡아 김영삼정부의 대표적 경제 관료로 꼽힌다.
부총리 시절에는 한은 입행 동기였던 당시 김명호 한은 총재와 함께 금융실명제 도입, 정착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김영삼정부에서 중용된 경제관료인 만큼 ‘외환위기’의 풍파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이 전 총재는 외환위기 당시 1997년 12월 임창렬 당시 경제 부총리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서에 서명했다.
1999년 국회 IMF 환란 조사특위에 한은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따르면, 이 전 총재가 이끌던 한은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앞서 8개월 전인 1997년 3월 외환위기의 조짐을 느끼고 IMF 긴급자금의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는 한은의 독립성과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은이 가진 은행감독 기능을 은행감독원에 보내는 대신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함께 마련했다. 당시 한은 내부의 반발이 컸지만 이 결정은 훗날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의 초석이 됐다.
김대중정부가 들어선 뒤 이 전 총재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귀국 후 2009년부터 지금까지는 경제인들의 친목단체인 21세기 경영인클럽 회장을 맡아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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