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19] 신복룡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입력 2021. 10.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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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읽다 보면 결국 사람에게 관심이 귀결된다. 그래서 편년체(編年體) 역사 서술보다는 열전(列傳), 인물사(人物史), 전기학(傳記學)이 훨씬 흥미롭다.

해방 공간의 좌우 인물들을 연구한 신복룡(79) 선생과 대화할 때마다 귀를 쫑긋하게 하는 이야기가 많다. “해방 공간에서 좌우로 진영이 나뉠 때 처음에는 이데올로기 때문이었지만 좀 더 파고들면 혈육이 나와요. 여운형, 허헌, 홍명희, 박헌영의 자식들은 이미 이북에 가서 살고 있었어요. 이들이 이북으로 가게 된 원인의 일정 부분은 자식들 문제도 있었다고 봐야죠. … 혈육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 돈이에요. 돈 앞에 장사 없었죠. 여운형이 가장 믿었던 동생 여운홍이 형의 믿음을 떨쳐버리고 인민당을 떠나 사민당을 창당하게 된 데는 돈이 작용했죠. 미 군정청 공작금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지 중장 밑에서 정치 참모를 했던 리어나드 버치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를 하다가 한국으로 왔죠. 계급은 중위였어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출세한 중위’라고 말했죠. 1910년에 태어나서 1976년에 죽었으니까 30대 중반 한국 해방 공간에 와서 좌우 합작 플랜을 주물럭거렸어요. 술을 마시고 난폭 운전을 해서 교통 딱지를 여러 장 떼였다고 해요. 버치가 미국에서 죽기 전에 ‘한국전쟁의 기원’을 준비하고 있었던 브루스 커밍스가 직접 만나 인터뷰도 했다고 나오죠.”

박근혜 정권 때 국방장관을 지내고 있던 한민구를 필자가 용산 국방부로 찾아가 인터뷰하게 된 계기도 신복룡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항일 의병대장이자 게릴라전을 하면서 총을 잘 쐈던 명사수가 한봉수(韓鳳洙·1884~1972)였다. 그 한봉수의 손자가 한민구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정말 총을 잘 쐈습니까?” “명사수였어요. 말년까지 총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 손자인 제가 어렸을 때부터 총을 가지고 놀도록 허락하셨죠. 그래서 제가 10대 때부터 총을 분해할 줄 알았어요”.

신복룡 선생이 이번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총 5권을 번역해 내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보다 인물사에서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는 서양 전기학의 요람이 되는 책이다. 아테네의 전성기 정치인이자 파르테논 신전을 지은 페리클레스 편을 보니까 태몽이 사자 꿈이었다. 어머니가 사자를 낳는 꿈을 꾸고 페리클레스를 낳았다는 내용이다. 그리스도 태몽을 중시하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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