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 칼럼] 에너지대란, 프랑스식 사고가 필요하다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국이지만 탈원전 기조의 선도국가였던 프랑스 정부가 지난주 원자력발전 연구개발(R&D)에 10억 유로(약 1조377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금기시됐던 원전 신설을 신임 총리가 거론하고 나섰다.
탈원전이 지구촌 대세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원자력 발전이 주요한 화두가 되어버렸다. 프랑스와 일본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통해 에너지 자립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한발 더 나가서 프랑스, 핀란드, 체코 등 유럽 10개국 경제 및 에너지장관 16명은 기후변화 문제에 원전이 필수적이라는 공동선언문을 지난주 발표했다. 아울러 유럽연합(EU) 녹색금융 분류체계에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 녹색 금융지원 대상에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나라도 두산중공업 등 주요 업체들이 SMR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전세계가 화석연료를 배척하고 탄소중립, 신재생에너지 생태계 구축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작금의 에너지 위기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다. 녹색바람이 불러온 인플레이션인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의 역설'이 세상을 뒤덮고 나아가 수요없는 인플레이션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지구촌 경제를 내몰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은 코로나19 사태로 극심한 침체를 겪고있는 지구촌 경제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있는 양상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탄받던 석탄 가격은 1년새 5배 이상 뛰었다. 석유와 천연가스 역시 3배 이상 값이 오르며 귀하신 몸이 됐다. 중국은 석탄 수급 차질로 인한 심각한 '전력 대란'을 겪고 있다. 또 다른 신흥개발대국 인도 역시 석탄 부족 등 에너지 대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양대 공급망 대국의 에너지 위기는 전세계 공급망체계(GVC)를 흔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요 부진 속의 인플레이션, 즉 스태그플레이션 발발 가능성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게다가 그린플레이션 유령까지 어른거린다. 유럽은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석탄발전소를 무더기로 폐쇄하고 풍력발전을 늘렸지만 급증하는 전력 소비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현재의 화석연료 가격급등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전되면서 전력 에너지 소비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그 바탕 원료인 화석연료의 대체재는 아직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탄소중립 지구촌'에서 조만간 퇴출될 것 같았던 핵심 에너지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수출을 포함한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바람 앞의 등불' 이상이다. '위드 코로나'에 앞서 불어닥친, 우리가 상상해보지 않은 복합위기 앞에 우리 경제가 서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의 정책과 대책들이 적절했는지, 또 앞으로도 유효할 지 등을 총체적으로 짚어보고 대책을 조속히 강구해야 한다. 산업계는 급속한 탄소중립 정책이 기업들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고 한국 경제에까지 파급될 경우의 심각성을 따져봐야 한다. 이번 에너지 대란 사태가 중국이나 인도에서나 벌어지는 '강건너 불'의 상황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직시해야 한다. 당장 철강, 자동차 등 우리 대표 제조업체들의 공급망은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의 유연한 정책 전환은 눈여겨볼 만하다. 원전 비중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던 EU도 지난해 12월 결의안을 통해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원전의 역할을 공식 인정했다. 에너지 정책을 화석연료 생태계 시대의 관점으로만 보고 마냥 서두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새 환경을 출현시키고 있다. 에너지 문제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교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만 '묻지마 탈원전'의 길을 갈 수는 없다. 기존 정책에 대한 탄력적인 성찰과 유연한 대처가 화급한 시점이다.
차상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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