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민주화·통일운동 헌신한 '평화의 사도' 잠들다

김경애 2021. 10. 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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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간 미주에서 한반도 평화운동에 헌신한 이행우 전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 회장이 1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전북 익산에서 난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를 나와 1960년 함석헌 선생 등과 '퀘이커 서울모임'을 창립했다.

고인은 미국에서 컴퓨터 시스템 전문가로 일하며 2013년 귀국할 때까지 45년 간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운동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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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우 전 수난자가족돕기회장 별세
1960년 함석헌 선생과 '퀘이커 모임'
1980년 '5·18' 계기 민주화운동 앞장
1989년엔 범민족대회 북미 추진본부 결성
2000년대 6·15공동위 등 통일운동 주도
2011년 한겨레통일문화상..2년뒤 귀국
2020년 제1회 광복평화상을 수상한 고 이행우 선생. 광복회 제공

수십년 간 미주에서 한반도 평화운동에 헌신한 이행우 전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 회장이 1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0.

전북 익산에서 난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를 나와 1960년 함석헌 선생 등과 ‘퀘이커 서울모임’을 창립했다. 8년 뒤 미국으로 건너가 퀘이커 교단 교육기관 펜들힐에서 공부하고 필라델피아 에 정착했다.

고인은 미국에서 컴퓨터 시스템 전문가로 일하며 2013년 귀국할 때까지 45년 간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운동에 힘썼다. 1982년 노벨평화상 수상(1947년) 단체인 미국퀘이커봉사회(AFS)의 2차 방북단 대표로 미 엔지오 단체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이래 40여 차례 오가며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앞장섰다. 또 1993년 ‘고난의 행군’ 중이던 북한을 돕기 위한 ‘미국퀘이커봉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 농업 지원과 인적 교류도 추진했다.

그는 박정희 군사 정권에서 고문·투옥·살해당하는 양심수들을 돕고자 한인 동포들과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 결성에 나서 세계적 이론물리화학자 김순경 박사 뒤를 이어 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1~87년에 7~12대 회장을 지냈다. 특히 도미 12년 만인 1980년 5월 처음 귀국한 그는 때마침 함석헌 선생 집에서 ‘5·18 광주’ 참상을 실시간으로 전해 듣고 미국으로 가는 도중 일본에 들러 정경모·오재식·박형규·지명관 선생 등에게 ‘광주 학살의 진상’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1986년 한겨레미주홍보원(KIRC)을 창설해 영문 뉴스레터 <코리아 리포트>를 발행했고, 1987년엔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지원네트워크(KSN)도 결성했다.

1989년 범민족대회 북미주 추진본부를 결성했고 2001년에는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결성을 주도하는 등 통일운동 선두에서 활동했다. 고인은 미국 체류 중에 틈틈이 귀국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갈등해결센터 설립(1998년)과 비폭력평화물결 설립(2002년)을 지원한 데 이어 2009년 아시아태평양 무기경쟁 종식을 위한 국제회의 등도 이끌었다.

고인은 2011년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서 주는 제13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았고, 2020년에는 광복회가 제정한 ‘광복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구술 아카이브 녹취를 토대로 올해 들어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던 중 말기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부인과 두 아들 등 유족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한 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모실 예정이다.

김경애 선임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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