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또, 여전히 구명줄은 없었다

하어영 2021. 10. 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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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재수가 없으면, 끊어진다고 그러더라고요."

사고를 '운'에 빗댄 공무원의 말은 드라마 감상평처럼 건조했다.

지원 나간 첫날, 차씨는 구명줄 없이는 일을 못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공무원의 말대로라면 구명줄 없는 현장도 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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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지난 1일 차아무개씨의 추락 사고 현장에 주민들이 애도의 뜻을 담은 꽃다발을 놓아둔 모습. 왼쪽 꽃다발에는 어린아이가 쓴 것으로 보이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포스트잇에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형아 좋은데 가서 행복하게 지내야 되(돼)”, “우리를 위해 외벽 청소를 하시다가 돌아가셔서 슬퍼요. 그곳에서 잘 살아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승욱 기자

하어영 전국팀장

“걸리면, 재수가 없으면, 끊어진다고 그러더라고요.”

사고를 ‘운’에 빗댄 공무원의 말은 드라마 감상평처럼 건조했다. 그의 말처럼 ‘운’ 때문이었을까. 9월27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외벽, 청소를 위해 로프 여섯 줄이 내려졌다. 7년차 로프공 차아무개씨가 옥상 난간에서 내려선 시각은 오전 8시38분. 49층, 땅까지 125m였다. ​한 시간 반을 버틴 차씨의 로프는 15층을 지날 무렵 끊어졌다. 차씨는 로프 여섯 줄 중 하나를 직접 골랐다고 한다. 다섯명과 달리 그만 철제 아파트 로고 위를 지났다. 로고 사이로 내려진 로프를 스스로 옮겼다는 증언이 나왔다. 거기서 로프는 끊어졌다. 왜 그랬을까.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간판 로고 사이로 (두 사람이 내려)가면 한쪽으로 치우치니까요. 그럼 작업하기 불편하니까.”

차씨가 떠난 자리, 그만 입증할 수 있는 말들로 가득했다.

“로프를 내리면 그다음 안전장구, 보호대, 이런 것들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요.”

차씨가 간판 모서리에 댄 청소용 고무장갑도 문제였다. 그가 옥상 난간 모서리를 넘을 때는 지급받은 보호대를 로프에 끼웠다. 간판에 다다랐을 때 그가 왜 고무장갑을 댔는지 알 길은 없다. 보호대 여분이 없었는지, 설치할 여유가 없었는지…, 궁금증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업체에서는 “안전교육도 했고, 장비도 사줬다”고도 했다. 고무장갑은 쉽게 닳았다. 로프가 끊어진 계기가 됐다.

운수 없는 날, 과실이 겹친 죽음이었을까. 현장 동료는 말을 아꼈다. 분명한 건, 로프공에게 로프의 작업 반경은 하루 밥벌이라는 사실이다. 층별로 매겨지는 ‘평당제’는 그들의 계산법이다. 평당 180원 내외, 30평대 20층을 기준으로 하면, 한 라인에 최소한 10만원 이상을 손에 쥔다. 차씨가 밧줄을 탄 아파트는 43층이다. 곱절의 돈을 약속받았을 것이다. 업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차씨는 발아래 로고 사이로 겹칠 듯 내려진 로프를 봤을 것이다. 자기든 옆 사람이든 작업하기 불편한 건 분명했다. 로프를 집어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운이 없었고, 과실도 있었다고 치자. 그러면 책임은 온전히 그의 몫일까. 언론은 일제히 구명줄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추락을 막기 위해 “안전대 및 구명줄을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업체 다른 관계자는 말했다.

“강풍 때문에 보조줄(구명줄)을 안 한 거예요. 꼬이면 더 위험하거든요.”

그날 기상청 날씨는 ‘바람 없는 맑음’이었다. 관계자는 “현장 팀끼리 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실은 현장에 있다는 말로 들렸다. 다른 현업 로프공들에게 물었다.

“구명줄요? 그거 하면 제시간에 못 끝내는데?”

현장에선 구명줄 설치는 안 한다기보다 못 한다. 구명줄을 달면 작업시간은 두배 이상 늘어난다. “(물 등) 민원 때문에 빨리 끝내길 원한다”고 했다. 지원 나간 첫날, 차씨는 구명줄 없이는 일을 못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공무원의 말대로라면 구명줄 없는 현장도 운일까.

사고 일주일 만인 지난 4일 고용노동부가 자료를 냈다. 사고를 원인별로 셈했다. 지난 3년 동안 떨어져 숨진 로프공이 서른아홉명이다. ‘파단’(끊어짐), ‘풀림’ 등 로프 문제(구명줄 미설치 포함)가 8할을 넘는다. 문제는 로프다. 여기서 고백한다. 2017년 9월 <한겨레21> 제1179호에 ‘여전히 구명줄은 없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팀장이었던 나는 당시 교육연수생의 취재를 도왔다. 4년 전에도 “문제는 로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4년이 흘렀다. 그해 12명, 이듬해 12명, 그리고 올해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운이 없었다”는 공무원의 말에 화를 낼 자격이나 있는 것일까. 운도, 과실도 아닌데, 문제는 밧줄인데….

haha@hani.co.kr

사고 당시 작업을 시작했던 아파트의 옥상 공원. 1일 현장을 찾았을 때 잠긴 문 위에 ‘추락방지조치 미실시로 작업을 중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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