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헌법책' 읽는 시간

한겨레 2021. 10. 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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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을 바라보는 백발의 어른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헌법대로 해라" "헌법대로 살자"고 말했다.

김 이사장과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은 2016년부터 아예 <손바닥 헌법책> 을 제작·보급하고 있다.

<손바닥 헌법책> 은 실제 크기가 초등 5~6학년 아이 손바닥만하다.

두꺼운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를 큰 소리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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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권영란ㅣ진주 <지역쓰담> 대표

여든을 바라보는 백발의 어른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헌법대로 해라” “헌법대로 살자”고 말했다. ‘이놈의 나라’가 맨날 책임과 의무만 강요하고 국민의 권리는 가르치지 않는다고도 일갈했다.

얼마 전 경남 1세대 공익활동가 기록사업으로 김용택 어른을 만났다. 그는 현재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김 이사장은 사실 1989년 전교조 출범과 명동성당 단식농성의 주역이고, 경남지역 교육현장에서 30여년 참교육을 실천한 교육운동가이다. 그런 그가 정년퇴직 후 뜻 맞는 이들과 새롭게 시작한 것이 헌법 교육 운동이다.

“남녀, 학벌, 사회적 지위… 이런 걸로 차별받는 게 헌법 정신이 아니잖아요.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이다’, 이것만 확실히 알면 노동자가 왜 부끄러워요?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왜 불이익을 당해야 해요? 노인이 왜 부끄러워요? 학교에서 정작 헌법을 가르치지 않아요. 헌법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김 이사장과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은 2016년부터 아예 <손바닥 헌법책>을 제작·보급하고 있다. 1인 1권 갖기 운동이다. <손바닥 헌법책>은 실제 크기가 초등 5~6학년 아이 손바닥만하다. 작은 가방이나 지갑에 넣어 다니다가 펼쳐 읽기에 좋다. 책값으로 인쇄비 500원을 받는다. 모두 70쪽 정도 되는데,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본문 130조와 부칙 6조까지, 그리고 세계인권선언 30조까지 담고 있다. 작정하고 읽더라도 설렁설렁 1시간이면 충분하다.

김 이사장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가방에서 <손바닥 헌법책>을 꺼내 펼쳐놓고는 우리가 왜 체계적인 헌법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말한다. 헌법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의 틀을 짜놓은 것이며, 헌법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열등감보다는 자존감을, 경쟁심보다는 주체성과 자유를, 그리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더듬어보니 초중고 12년을 다니는 동안 헌법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을 펼쳐 본 적도 없다. 남아 있는 선명한 기억이라면, 열한살 그 무렵 우리는 교과서 맨 앞의 두 바닥이나 되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다. 또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야 했고, 국민의 3대 의무를 숙지해야 했다. 어떤 교사도 국민의 권리는 강조하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시험 문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화석화된 그 문장들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즉에 헌법 교육을 받고 컸더라면, 국가의 틀은 놔두고라도 최소한 개개인의 삶은 좀 달랐을까 싶다. 여자라서,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해서, 장애인이라서 등 온갖 이유로 받는 차별과 소외에 평생 주눅 들어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 이전에 국민이 어떤 존재인지, 의무 이전에 권리가 어떤 것인지를 익혔더라면 주권자로서 좀 더 당당하게 살아냈을 것이다.

오늘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장애 학생 입시 차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국립대학인 진주교육대학이 입학 서류전형에서 장애 학생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것이다. ‘장애인 교사는 안 된다’가 이유였다. 국정감사에서도 오랫동안 지원자의 장애 유형과 등급을 입시 평가자료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전국의 장애인 권익단체들은 진주교대 앞에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갑갑한 마음에 눈앞의 <손바닥 헌법책>을 펼쳐든다. 두꺼운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를 큰 소리로 읽는다. ‘헌법대로 살자’는 그저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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