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불로소득 '악마화'하는 정치

한겨레 2021. 10. 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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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악마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본인이 그 사업을 설계했다고 자랑까지 했던 집권당 대선 후보는 그걸 불로소득이라 퉁치며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를 비켜간다.

한국 사회에서 규탄과 징벌(적 과세)의 대상으로 당연시되는 불로소득은 실은 그저 근로소득의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며 인공지능의 학습을 도와 소득을 얻는다거나, 공공 블록체인의 검증인 구실을 하며 배당을 지급받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험과 검증을 기다리는 판국에 불로소득 타도를 알리바이 삼아 태업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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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뉴노멀-혁신] 김진화ㅣ연쇄창업가

상대를 악마로 규정한다. 쟁점을 비틀어 자신들의 책임과 과오는 슬쩍 은폐한다. 투박하기는 해도 잘 먹히는 방법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무능할지라도 악마와 싸우는 존재로 자리매김만 할 수 있다면 당선에 재선은 따놓은 당상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 정치기술자들이 득세 중이다. 필요하다면 풍차를 만들어서라도 돌진하겠다는 돈키호테의 후예들. ‘악마화의 시대’를 끝내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당선 연설이 일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뇌리에 맴도는 것은 여전히 그 시대가 요란하게 지속되고 있기 때문일 테다.

나아가 멀쩡한 개념과 상식에 대해서까지도 거침없이 악마화하는 행태가 노골화되고 있다. 예컨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엉뚱하게도 비난의 화살은 불로소득을 향했다. 알다시피 대장동 관련자들의 천문학적 배당액은 불로소득이라는 용어로 뭉뚱그릴 수 없는 불법과 탈법의 산물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적어도 사정당국이 내린 판단이 그렇다. 국민 여론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본인이 그 사업을 설계했다고 자랑까지 했던 집권당 대선 후보는 그걸 불로소득이라 퉁치며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를 비켜간다.

부동산 시세가 오르고, 코스피 3천 시대가 열리고, 비트코인이 전고점을 돌파하는 등 자산시장이 팽창하면서 불로소득은 지탄과 징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불법소득과 동일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의 오염이다. 공공의 인허가권을 동원해 천문학적 부당수익을 거둔 건 그들인데,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안한 노후를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짜고 바지런히 투자에 나선 많은 장삼이사들까지 싸잡혀 욕먹고 단체기합 받는 형국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규탄과 징벌(적 과세)의 대상으로 당연시되는 불로소득은 실은 그저 근로소득의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개념 자체엔 아무런 가치판단이 들어 있지도 않고 그럴 여지도 없다. 미국 국세청은 소득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한다. 적극, 수동, 포트폴리오 소득. 부동산 임대 등을 통한 수동 소득, 배당 등 포트폴리오 소득은 모두 불로소득이다. 이들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는 근로소득 대비 우호적(favorable)이다. 경제흐름에 다시 투입되는 소득이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얘기 할 것도 없이, 정부가 그토록 홍보하는 국민연금이 대표적 불로소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온 기본소득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휘도 임번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수상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불로소득”이 노동시장 참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급격한 자산 버블로 근로의욕이 꺾이고 한탕주의에 매몰되는 세태는 함께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자산 버블 역시도 잘못된 경제정책의 결과이지 탄탄한 소득구조를 만들기 위해 분투해온 일반적인 경제주체들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경제구조 혁신을 강조한다. 미래를 대비할 적임자가 자신임을 역설한다. 일자리 대통령을 공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를 만들기 싫어 공공일자리만 만들다 임기 말이 되었겠나. 고용 없는 성장이 뉴노멀이 된 지 오래인데 언제까지 근로소득만 찬양하고 있을 건가. 자영업까지 몰락하고 있는 마당에 기본소득이 됐든 국민배당이 됐든, 경제주체들의 소득구조를 시대 변화에 걸맞게 탄탄하게 구성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게 정치의 과제 아닐까.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며 인공지능의 학습을 도와 소득을 얻는다거나, 공공 블록체인의 검증인 구실을 하며 배당을 지급받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험과 검증을 기다리는 판국에 불로소득 타도를 알리바이 삼아 태업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세비는 진짜 근로소득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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